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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길 위에서<2010>

소매물도가는 길에<1>

by 자 작 나 무 2010. 9. 18.

아침 일찍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매물도에 가고 싶어졌다. 점심 무렵에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긴 하지만 방과후 미술 보강하고 곧장 환경캠프에 참가할 예정이어서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시간이 주어졌는데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멍하니 있기엔 너무 아까운 날씨였다.  갑자기 거기까지 생각하고 보니 하루에 몇 편 있지도 않은 배편이 어떤지 조회를 해봐야했고, 주말 증편 시간이 10시인줄 알았는데 9월 말까지 9시 30분이었다.

 

갑자기 머리 감고 옷 갈아입고 택시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9시 27분. 도시락으로 김밥이라도 좀 사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매표소에 앉아 계시던 분이 아는 분이어서 인사를 하니 혼자 가는 것이 안쓰러워서인지 돌아오는 배편은 반값 할인표를 끊어주셨다.

 

"어, 갑자기 무슨 일로 매물도에? 혼자 가요?"

"네. 혼자 가요. 갑자기 미친 듯이 거기 가고 싶길래 그냥 가요."

 

배가 떠나기 전에 가까스로 올라서 자리 잡고 배 안에서 먹으려고 들고 온 바나나를 꺼내먹었다. 금세 미끄러지듯 배가 후진하다 뱃머리를 돌려 통영항을 떠나오면서부터 열심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마리나 리조트 앞 방파제 끝에 있는 연필 등대와 저 너머 미륵산이 보인다. 이곳은 다리가 놓여 있어 지금은 섬이 아니지만 엄밀히 따지면 미륵도라는 작은 섬이다. 소매물도와 대매물도 사이에 물이 나면 건너서 섬으로 갈 수 있듯이 이곳도 그런 곳이었다. 운하를 파서 배가 다니게 되고 위로 다리를 놓아 온전히 섬의 모양이 된 다음 육지와 소통하게 된 곳이다.

 

내가 사는 저 산자락을 멀리서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내 인생의 주 무대를 객석에서 보는 기분이다.

 

 

 

초록 등대가 보이는 곳 앞에 긴 다리는 낚시 공원이고 그 옆에 노란 잠수함이 있다.

이곳도 잠수함으로 관광객을 모으고 있는데 아직 타보진 않았다. 서귀포 잠수함을 타본 것이 유일한 경험인데 조만간에 한번 타봐야겠다. 이 근처 바닷속은 어떨지.....?

 

 

딸이 잠수함 사진을 보고 열광한다. 자기 혼자 두고 섬에 다녀왔다고 투덜거리더니 사진을 보고 신나서 헤헤거린다. 조만간에 잠수함 태워준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므로.

 

 

 

통영항을 떠나 40분가량 바다 위를 달린 후 비진도에 도착했다. 어릴 때 해마다 여름에 배 타고 해수욕을 즐기러 오던 곳이었다. 너무나 당연히 여름이면 가던 곳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가까이 있어도 어른이 되어선 비진도에 가 볼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승객을 내려주고 다시 비진도를 떠나며 섬 둘레에 있는 절경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다음엔 이 섬에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진 비진도의 절경들. 늘 백사장만 보고 그만이었던 비진도가 이렇게 멋진 섬인 줄 미처 몰랐었다. 어차피 배를 타고 비진도를 거쳐 지나가지 않는 한에 이런 경치를 어찌 눈에 담을 수 있었을까.

 

 

 

배 시간이 저렇게 단출하니 세 번밖에 없으니 늘 나서기 애매했는데 주말에는 9시 반에 증편 운항하고 돌아오는 배도 오후 늦게 한편 더 있다. 9월 말 이후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9시 반 배를 타고 1시간 20 여분 걸리는 소매물도에 도착하니 걷기에 적당한 시간이었다.

 

 

 

가는 길에 눈에 띄었던 작은 바위 섬

 

 

 

 

 

 

 9시 30분 통영항 출발, 소매물도 10시 50분 도착

 

 

소매물도 선착장 옆 바위산

 

 

 

 

 

아침을 너무 간단히 먹고 올라와서인지 선착장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는 가풀막이 너무 힘들었다. 이쯤에서 나무 의자에 걸터앉은 사람들이 다 숨을 헉헉거리니 어떤 분이 여기를 즉석에서 여길 "깔딱 고개"라고 불렀다. 다들 숨이 깔딱 넘어가는 고개라나..... 물을 꺼내 목을 축이고 숨을 돌려야만 할 정도로 처음부터 너무 경사진 길이었다.

 

 

 

소매물도에 내려 등대섬까지 가는 길은 가파른 등산코스나 마찬가지라서 하늘거리는 원피스 입고 구두 신고 섬에서 무게 잡고 쿠크다스 광고 같은 사진 찍을 거라 생각하시면 오산이다. 정말 그래선 안 될 코스다.

 

 

 

소매물도  등대섬 가는 길에 보이는 바다나 섬이나 작은 바위산들의 자태가 모두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