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날이 너무 더워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 하나 넘어서니 드디어 사진으로만 보던 소매물도 등대섬 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환상의 섬 소매물도
이번 달 내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당첨된 사진
저 섬으로 가기 위해 오르막 내리막 급경사 반복 코스를 참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정말 쉽게 밟기 힘든 섬이다. 바로 앞에다 배를 대주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에 물이 나서 길이 열려야 건너갈 수 있다.
내가 도착한 시간대가 적당할 때여서 마침 섬을 충분히 구경하고 나올 만한 여유가 있었다.
달이 만들어주는 길
저곳에 파견되어 일하는 분들은 이 섬이 주는 낭만이 과해 고독하진 않을까? 매일같이 찾아드는 방문객들의 이야기 소리에 심심하진 않겠다.
친구에게 보낸 문자에 '커플 지옥'이라 표현했던 여객선에선 잘 참고 왔는데 이 섬에서 다정한 커플들이 한 폭의 그림이 되는 것을 보고 어찌나 부럽던지......(뒤에서 확 밀어버릴 수도 없고)
자연의 일부처럼 둘이 다정하게 앉은 모습이 다음에는 나도 꼭 누군가와 함께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혼자서도 자유롭게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사진 찍고 등대가 만들어준 그늘에 퍼질러 앉아 음악 들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역시 누군가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일까......
올라올 때도 힘들었지만 내려갈 때도 힘들었다. 그래서 정말 쉬엄쉬엄 몇 칸 내려가서 사진 찍고 몇 칸 올라오며 사진 찍고 그렇게 올라오고 내려와야 했던 길.
계단 옆 덤불 속에 곱게 핀 꽃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쩜 이리도 고운 색으로 피어나는 걸까.....
나도 수많은 잎과 덤불 속에서도 나만의 빛을 잃지 않고 늘 곱게 피어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어느 날 내 눈에 띄어 카메라에 담긴 저 꽃처럼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저 섬에는 어떤 물새가 날아들까...... 어떤 꽃들이 피고 질까......
바다 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섬이 나는 다 궁금하다. 그 땅을 딛고 서서 바라보는 하늘과 바다는 또 어떤 모습일지, 건너편 섬을 바라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
사람들이 대부분 등대가 있는 정상으로 난 길만 따라 걷고 곁으로 바닷가에 둘러친 울타리 곁길은 가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출입금지라는 팻말도 없는데 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버리는 것일까. 볕이 그렇게 뜨겁지만 않았다면 몇 시간이고 그 섬에 자리 잡고 누워서 노닥거리고 싶었다.
불과 두어 시간 팔을 내놓고 다녔는데 얼굴도 팔도 벌겋게 익어버렸다. 가을볕이 이렇게 뜨거운 줄 몰랐다. 팔뚝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린다.
서서히 소매물도로 열린 길이 닫히려 한다. 조금씩 조금씩 쌓인 돌들을 적시고 있다.
이 잔디밭에 누워 한바퀴 도르르 굴렀다 앉았다 하며 사진을 찍었다. 다음엔 꼭 도시락 싸와서 먹어야겠다. 조금 더 시원해지면 꼭 지영이 데리고 다시 와야겠다.
다시 소매물도로 넘어왔다. 2시 20분 임시 배편이 있어 그걸 타고 나가기로 했다. 섬 구경하고 사진 찍고 흰 등대 밑에 퍼질러 앉아 한참을 놀고 왔는데도 시간은 넉넉하게 남았다. 혼자여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2층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돈 내고 먹기 아까울 정도로 부실한 음식을 먹었다. 뭍에서 만 원짜리 밥이 이렇게 부실했나 싶어 비교하자니 끝이 없어 그냥 섬이니까 그렇다 하고 밥 한 그릇을 비웠다. 너무 배고파서 어떻든 먹어야 했으니까......
2층 테라스에서 밥을 먹는데 마침 그 아래에서 청년 세 사람이 다이빙한다. 정말 시원해 보인다. 부럽기 그지없다. 펜션에 머물거나 민박을 잡았더라면 오늘 같은 날씨에 꼭 한 번 더 바다에 들어가 보고 싶었을 것이다.
덕분에 맛없는 점심을 잘 참고 먹을 수 있었다. 청년들 고마워~~~ 역시나 군살 없는 몸매에 젊음을 과시하는 저들의 호기가 풋풋하게 느껴지는 광경이다.
선착장 근처에 새로 자리잡은 펜션이 즐비하다.
나도 저런 배 한번 타보고 싶다. 스킨스쿠버도 해보고 싶고, 요즘은 뒤늦게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통영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눈에 들어온 낚시 공원. 저 일대의 해안가는 모두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놔서 자전거를 타며 즐기는 풍경도 정말 멋있다. 가끔 멀리 여행 가지 못하는 주말에 자전거를 타러 저기 가곤 한다. 이렇게 좋은 동네에 살다가 사람 많고 답답한 곳에 가면 나는 아무래도 못 견딜 것 같다.
매물도에서 2시 20분 출발, 통영항 3시 40분 도착
어언 12년 만에 처음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기억에 오래 남을 하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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