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태양빛이 내리쬐는 오후, 아직 여름이라 해야 좋을 날씨였다. 뱃머리에서 충무김밥을 싸들고 어제 비와서 종일 방안에 갇혀 있던 우울을 말리러 한산도로 향했다.
우리가 탄 배와 같은 배가 통영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오랜만에 배타고 여행가는 것이어서 우리 꼬맹이 신이 났다.
My Heart Will Go on- Celine Dion
바다 위에 해삼 토막같은 섬들이 하나 둘씩 떠 있다.
출항한지 20여분 만에 거북등대가 보였다.
한낮 뜨거운 태양 아래 반짝이는 옥빛바다가 마음을 들뜨게 한다.
우리는 제승당으로 들어가지 않고 도로 끝까지 달려 종점인 '장작지'마을까지 갔다. 마을 한 가운데 마련된 넓은 자리에 앉아 여객선 터미널 앞에서 도시락으로 준비한 충무김밥을 먹었다.
길섶에서 한창 풀을 뜯던 염소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우릴 쳐다본다. 지영이는 염소 울음소리를 따라하며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듯 한참 "매에~~" 소리를 냈다.
등산복 입고 나가겠다 했더니 원피스 입고 나오지 않으면 같이 안가주겠다던 김샘이랑 지영이는 둘이 다리 걷고 바닷물이 너무 깨끗하다며 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사실은 수영하고 싶었다. 수영복 없어서 다들 아쉬워했다.
반반한 돌 골라서 신나게 물수제비 뜨기를 하며 놀았다.
지영이가 인어공주 바위라며 인어공주상과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달란다.
그 다음엔 타이타닉 놀이도 한다.
오늘 예술 사진 찍어준다고 나를 앉혀놓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준다. ㅋㅋ
역광이라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줄 알면서도 딸의 예술사진찍기 놀이에 적극 동참해준다. 그야말로 하늘빛이 예술이다.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이라 뒤로 걷기 놀이도 해본다.
그리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며 길에 벌러덩 들어누워 사진도 찍어달란다. 뉘집 딸인고?
우리가 놀던 장작지를 뒤로 하며 바닷가를 따라 천천히 걸어본다.
차를 타고 창너머로 시선 한번 던지며 지나가는 길에 보는 바다와는 또 다른 맛이다.
이 모든 풍경을 천천히 들이쉬는 호흡마다에 새겨넣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실컷 사진 찍어놓고는 신이난 내게 '나상실'버전이란다. 나상실이면 어떻고 어이상실이면 어떠냐?
얌체같이 얼린 물은 저혼자 다 먹고..... 내 모자에 버들강아지 꺾어 몇 개나 꽂아들고 간다.
이 아름다운 광경들을 보며 이런 것들이 나를 여기 머물게 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각박한 도시를 벗어나 이런 곳으로 찾아들기엔 너무나 먼 곳으로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내 주변의 환경들은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
인적이 드문 길, 조용한 남도 끝자락 어느 섬에서 또 섬으로 이어진 길..... 외롭지만 그래도 견딜만하지 않느냐고 구름이며 바람이 내게 속삭이는 것 같다.
저 멀리 우리를 태우고 갈 오늘의 마지막 배가 들어온다.
한산도 제승당 발 6시 30분 배가 들어왔다.
통영항에 도착하니 저만치 어제 숨어 있던 보름달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사진만 몇 장 찍고 오겠다고 구두 신고 나갔다가 몇 Km나 걸었더니 어제 모자란 잠에 피로가 겹쳐 집에 돌아와서 그대로 곤하게 잠들어버렸다. 자다 깨어보니 한낮의 일들이 모두 꿈만 같다. 사진을 꺼내어 본다. 꿈은 아니었나 보다.
꿈결같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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