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통영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탔다. 정말 오랜만에 딸과 함께 집 떠나 짧은 여행을 하게 되었다. 고3인 딸이 요즘 들어 자주 머리가 아프고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하여 자꾸 신경이 쓰인다. 뭘 도와줘야 할지 몰라서 생각하다 정신집중에 도움이 될만한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용인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용인으로 이동하여 지난주에 이미 한 번 다녀간 적 있는 사찰에 갔다. 미얀마에서 '아나파나 사티'의 대가로 인정받는 스님이 오셔서 그 절에 있는 국제선원에서 직접 '아나파나 사티'지도를 하신다는 자리다. 금요일부터 2박 3일에 걸쳐 진행되는데 우리는 토요일 아침부터 참여했다.
(아나파나= 숨쉬기, 호흡법/ 사티 =집중)
한쪽 발에 뼈 한마디가 더 자라는 부주상골 때문에 다리와 발이 자주 아프다는 딸은 나와 나란히 뒷자리에 앉아서 다리 쭉 뻗고 있었다. 나는 가부좌에 단련되어 견딜만했는데 딸은 앉아있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12시간 참여가 끝난 뒤 해산.
전날 밤늦게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짧은 시간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 근처 찜질방에 들어갔는데 한숨도 못 자고 나왔다. 너무 피곤해서 비몽사몽간에 앉아있다가 토요일 저녁엔 절에서 마련해주신 잠자리에 눕자마자 바로 잠들어버렸다. 내 말 몇 마디에 혹해서 거제에서 오신 선생님 한 분이 늦게 도착하셔서 함께 잤다. 지난주에도 그 선생님 먼 길 다녀가셨는데 2주 연속으로 그 선생님도 이곳에 다녀가셨다.
한숨 자나 싶었는데 새벽 3시 45분에 누군가 불을 켰다. 참선 모임은 새벽 4시에 시작된다. 그 전날도 그랬던 모양이다. 10분 만에 세수만 하고 얼른 모임 장소로 쫓아갔다. 참선과 관련된 행사는 10시 반쯤 모두 마무리되었다.
딸이 축복받는 모습.
옆에 항상 통역하시는 분이 있어서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었다. 뭔가 딸의 마음이 바뀌는 좋은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나도 이런 모임엔 처음이다. 국제선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외국에서 오신 분들도 함께 참여하는 자리였다. 사진 속의 스님(삐냐저따 스님)은 일요일 오후에 미얀마로 출국하셨다. 미얀마까지 찾아가도 한 번 뵙기 힘든 분이라는데 우리는 운이 좋았다.
점심 먹기 전에 산신재(山神齋)를 한다고 구경하고 가라시길래 남는 시간 동안 절에 있던 동물이랑 놀았다. 선원 안에는 알을 가져와서 부화시켜서 키운 공작도 4마리 있었다.
절에 사는 개가 강아지 4마리를 낳았는데 그중에 검둥이 한 마리를 행자승이 꺼내서 딸 손에 건네주셨다. 처음 고물고물한 아기 생명체를 만져본 딸의 생경하고 행복한 표정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산신재 하는 중에 미얀마에서 온 신도 중에 젊은 아가씨가 '접신'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저 아가씨에게 접신한 신이 산신이라는데 중국말할 줄 모르는 아가씨가 한국말을 알아듣고 중국어로 답하고 그 전후로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정말 쉽게 보기 드문 일인데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신기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내 딸을 두고 진학 상담을 따로 해주신 각계의 박사님 세 분의 진중한 조언이 딸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철학박사, 경제학 박사 등 경력을 듣기만 해도 입이 쩍 벌어질 대단한 분들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절 안에 한적한 곳에 설치된 야외 카페 같은 곳에서 오붓하게 딸의 진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외에도 12년 전에 내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분들로 이리저리 이어진 인연들을 거기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두 분이 함께 통영 여행 와서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기도 했고, 욕지도 여행, 추석 여행 등을 함께 다녔던 분들이다. 어언 12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도 그때 그 모습인 것 같고, 그때 그 마음인 것 같아 참 신기했다.
"아직도 그 집에 살아요? 또 통영 가서 그 집에서 자고 싶네....."
우리끼리 속닥속닥 이야기하다가 자리를 카페로 옮겼다. 떠나기 전에 디저트로 맛있는 망고 빙수를 사주신대서 따라갔다.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나온 빙수를 먹기 시작했다.
먹다 보니 빙수가 하나 더 나오는 거다. 빙수가 메뉴판에 2인용이라 되어 있어서 2개를 주문하셨단다. 띠동갑 언니들 손도 크고 통도 크시다. 컥~
어마어마한 양의 빙수, 4인분이라 해도 될만한 양이었다. 두 분은 드시는 시늉만 하고 우리 모녀가 두 접시를 거의 다 먹었다. 그 더운 날 우리 모녀를 일부러 그 카페까지 데리고 가서 시원한 걸 사주시는 마음이 정말 고마워서 끝까지 다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몸도 마음도 한꺼번에 시원해지는 시간이었다.
빙수 먹다가 너무 추워서 밖에 나가서 뜨거운 볕 쬐고 들어와서 또 먹고 그래도 너무 추워서 거기 마련되어 있던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다들 웃긴다며 사진을 찍어준다. 이 더운 날 추워 죽는다고 담요 쓰고 있다고 한바탕 웃었다.
옛날 옛적에 욕지도 가던 배 위에서 맥주를 나눠마시던 언니들을 12년 만에 다시 만났다. 다들 온라인으로 알게 된 인연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람을 알게 되던지, 사람 나름이다. 온라인이라 쉽고 가볍게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에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저 사진 속의 나는 37살이었다. 한 분은 저 때 딱 지금의 내 나이였고, 한 분은 그보다 2살 위인 분인데 세월이 12년이나 더 지났는데 저 모습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저 언니들은 어느새 환갑이 훨씬 넘으셨는데 얼굴이 그다지 변하지 않아서 서로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나도 그사이 살을 좀 뺀 덕분에 30대에 뵈었을 때 얼굴이랑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찬 걸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어서 혹시 가는 차 안에서 배탈 나서 아플까 봐 정로환까지 챙겨주셨다. 딸은 잘 모르는 사람에겐 뭐든 잘 안 받으려 하는데 기억나지 않아도 어릴 적부터 알던 사람이라는 생각에 용돈 10만 원 받고 헤벌쭉했다.
딸이 7살 때 만났을 때도 그랬다. 헤어질 때 휴대폰에 매달고 다니시던 작은 순금 돼지를 딸에게 주고 가셨다. 학교 갈 때 새 가방 사주라며 주고 가신 금 돼지.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워서 형편이 몹시 어려울 때도 팔지 못하고 여태 간직하고 있다.
절에선 내내 먹고 앉아만 있었더니 체중이 이틀 사이 3kg이나 불었다. 절밥이 그냥 그렇다던데 그 곳은 뷔페식으로 반찬을 열댓 가지씩 내놓으니 적게 먹을 수가 없었다.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하기 힘든 새로운 경험도 했다. 집에 돌아오면서 딸이 내게 여러 가지 쏟아놓은 후기는 정말 만족스럽다.
등받이 없이 바닥에 오래 앉아 있어서 전신이 아프다고 툴툴거리고 집에 가고 싶다고 악다구니를 쓰더니 의외로 돌아오면서 하는 말은 너무나 특별하고 기분 좋은 경험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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