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말이 없다.
어디로 나설지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다 문득 소가야의 중심지였던 고성으로 왔다. 어떤 삶을 살았거나 죽은 뒤에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는 없다. 저 너머 산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커다란 무덤 아래 누운 자라 할지라도 인생은 현재를 살 때 중요한 것이다.
지금 내가 밟고 선 현재라는 시간, 바로 곁에 있는 인연만이 내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초록 이불을 정갈하게 덮고 누운 얌전한 봉분 주변을 사박사박 걸으며 자주 하늘을 보았다. 이렇게 높고 커보이는 무덤도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한낱 점 같을 것이다. 저 잘났다고 목청껏 길에서 외치고 있는 이들 또한 미미한 존재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귀를 열고 바람 소리를 듣고, 베어낸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진한 풀 냄새를 맡으며 걸었다. 말이 없는 자들의 뜰에서 거니는 것이 어쩐지 편안하다. 나는 어떤 이유에서건 말이 많은 사람이다.
소리내어 하는 말보다 속으로 혼자 읊조리는 말이 많다. 주기적으로 정리하고 덜어내지 않으면 생각에 체한다. 입 밖으로 꺼내는 것보단 글로 토해내는 것이 한결 편하다.
평일 낮이라 혼자 길을 독차지하다시피 해서 사진을 참 많이도 찍었다.
고성군 송학동 고분군 둘레로 난 길을 빠짐없이 걷고 또 걷다가 나무 계단 아래로 이어진 고성 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박물관엔 역사 책 속에서 마주하던 유물들 중에 이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 위주로 전시되어 있었다. 송학동 고분을 발굴했던 당시의 내부 사진과 이렇게 큰 고분을 어떻게 조성했는지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미니어처로 만들어놨다.
전시관 마지막 코스에 이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 중 '영혼의 전달자'라는 별칭이 붙은 새무늬 청동기 탁본 체험하는 곳이 있다. 정작 탁본을 위한 화선지와 먹물은 없지만, 하얀 종이와 크레용이 대용품으로 준비되어 있길래 종이를 지긋이 누르고 두 가지 색깔로 각각 한 장씩 베껴왔다. 한 장은 딸에게 주고, 한 장은 친구에게 줄 참이다.
오늘 유난히 자외선이 강하고 햇빛이 뜨거워서 애초에 고성으로 향할 때 계획했던, 남산공원을 야무지게 걸어보겠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시원하고 조용한 고성박물관 북카페에서 쉬기로 했다. 한낮의 열기가 아직 한창일 시각인데 한 시간 가량 그리 넓지 않은 실내에 머문 뒤라 슬슬 좀이 쑤신다. 결국 다음 코스로 향해야했다.
큰길을 따라 걷다보니 오늘부터 시작된 선거유세팀들이 즐비하게 섰다. 살짝 굽어진 다른 길로 들어섰다. 한참을 걸어도 예전에 알던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익을 것 같은데도 이미 들어선 우회로가 일직선이라 그냥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가다보면 내가 아는 길과 마주칠 수 있을 줄 알았다.
한때 그 동네 살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고성을 떠난지 어언 20년도 넘었다. 길게 잡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벌써 두 번 이상은 변하고도 남았을 세월이 지났다.
볕이 뜨거워질 즈음이면 옥상에 올라가면 건너집에 주황빛 고운 능소화가 아련하게 피어 담을 넘고, 우리집 마당에 제법 색이 짙어진 감나무가 가지를 풍성하게 뻗치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통영에서 이사올 때 데려온 강아지 두 마리가 온 마당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며 놀았다. 대답도 못하는 개를 보고 사람에게 말하듯 말을 거는 어머니의 정겨운 목소리가 늘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각자 자기 인생을 살게 되기 직전까지 몇해는 이사한 그 집에서 더이상 행복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밤이면 다락방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 쏟아질듯 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며 신선한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키던 시간들..... 혹시라도 그 집이라도 어느 길에서 발견하면 감나무는 잘 있는지 한 번 보고 가려고 했는데 너무나 변해버린 그곳에서 나는 길을 잃고 말았다. 한참을 헤매다 도무지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서 터미널로 향했다. 그 시절은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가족들이 평화롭게 어우러져 살아본 꿈같은 시절이었다.
능소화가 너무 고와서 한없이 바라보다 피씨통신 닉네임도 능소화라 지었었고, 고성 장날마다 어머니랑 장이 들어선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모두 꿈이었던 것만 같다. 다시 찾을 수 없는 그 집도, 그 시절도 모두 꿈이었던 것만 같다. 어쩌면 태어나서 살던 집이 도로를 넓히느라 허물어진 것처럼 그 집도 넓은 새 길로 변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다시 고성에 가게 되면 이젠 곧장 남산공원으로 올라가야겠다. 그 집을 떠나기 전 안타깝게 견생을 마감한 우리집 마지막 견공 '쪼쪼'가 묻힌 언덕에도 어쩌면 새 길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변하고 또 변하는 것이다. 나도 따라 변하며 살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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