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출장 중
또 석 달 가량 집을 비우신단다
산 사람 목에 거미줄 치란 법은 없는 모양이군, 나는 생각했다
집 앞이 집 앞이니만큼
질펀한 데서 허부적거리다가 저녁에 들어오니
그저께 밥상보 위의 흰 종이
머리라도 자주 빗어넘기고 술 한잔도 두세 번에 나누어 마시거라 엄마 씀. 잠은 좀 집에서 자고 |
아무리 이래도 저래도
한世上 한平生이라는 각오를 했지만
내 삶이 점차 생활 앞에서 무릎꿇고 있다
한량 생활도 사는 건 사는 건데 이건 아닌 것 같고
치욕 없이 밥벌이할 수 있으리요마는 나는 이제 밥벌이 앞에서
性고문이라도 당할 용의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밥상 앞에서
먹고 사는 일처럼
끊을 수 있는 인연이 따로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감기 들면 몸살을 앓으시는 어머니
아! 한가하면 딴생각 드는 법
또 석 달 가량 나는 自由다, 라고 외치자꾸나, 내 젊음에 후회는 없다, 라고
그런데 냉장고에 양념된 돼지 불고기가 있어서 그만
엄마, 소리만 새어나왔다.
詩. 김중식
*
이 시를 읽고 마음이 먹먹해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딸을 두고 1년 먹고 살거리를 마련하러 멀리 나도 긴 출장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글 속의 한량이 되었다가, 긴 출장 가는 엄마가 되었다가 한다.
살겠다고 몇 달씩 집을 비우고 혼자 먹는 밥에 눈물을 말아먹어도 자식은 모른다.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까. 오늘 보낸 세 통의 이메일 결과는 알 수 없다. 이토록 밥벌이가 중요한데 실컷 놀다 와서 게임만 하고 있는 딸을 보니 한숨만 나온다. 그렇다고 다 큰 녀석을 불러놓고 일장 잔소리 한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고, 무식하게 두들겨 팰 수도 없고. 때 되면 저도 알게 되려니 생각하고 내가 해야 할 일만 하는 거다. 애초에 그렇게 살기로 했다. 그러려고 내 딸로 태어났을 거다.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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