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3
해마다 2월은 새 일자리 문제로 희비가 엇갈리는 날이 많고, 최고조로 불안하고 가장 가난한 시기다. 올해는 통장 잔고가 완전히 바닥난 상태로 대책도 없이 6개월을 일 없이 버텼기 때문에 예년보다 스트레스가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서류 미비로 바로 떨어지거나, 면접은 봤으나 면접장에서 본 경쟁자들에 비해 나이가 곱절이나 많은 나를 채용할리 만무한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한 시간을 초긴장 상태로 보내고 발끝까지 시리고 얼어붙는 오후를 맞는 하루도 있다.
가고 싶었던 자리는 얻을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입에 풀칠은 해야 하니까 남은 반쪽 자리를 또 차지하기 위해 이력서를 쓰고, 소개할 자기도 없는데 자기소개서를 써서 제출한다. 연락이 오지 않아도 무섭고, 연락이 와도 무섭다. 가서 얼굴 보여주고 떨어지는 것이나, 얼굴도 못 보고 떨어지는 것이나 서글프기는 매한가지다.
이제 먹고 살 방법을 달리 찾아야 하지 싶다. 10년 정도 달려서 좀 지쳤었는데 2월이 되니 더 먼 곳이라도 가볼까, 마음에 들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써주기만 하면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까지 바꾸고 쩍쩍 갈라진 입술에 뜨거운 김이 와닿는 걸 느낀다. 산입에 거미줄 치기야 하겠냐마는 매번 어렵고, 같은 일인 것 같지만 직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 만나야 하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과 성향을 읽고 익숙해져야 하는 이 일이 시작해서 끝날 즈음인 2월엔 도돌이표 타고 한 바퀴 돌다가 나온 듯 지쳐서 똑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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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현실적 대책도 없으면서 그때 오라고 전화가 몇 번이나 왔을 때 왜 거절하고 또 거절했을까. 그 대가를 이 불안함으로 치른다. 그땐 9월에 여행을 꼭 가야 하는 줄로 알았다. 내 인생에 일어나야 할 일을 비켜가는 선택이 빨간 약인지 파란 약인지 헛갈려서 내가 평소에 하지 않는 선택을 하면 인생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안전한 피로감을 선택할 것인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자유로움을 선택할 것인가. 후자를 선택해서 불안하기 짝이 없는 자유로움 속에 2월을 맞는다. 어떻게 완벽하게 좋은 것만 있겠어. 좋은 것과 나쁜 게 섞인 것 중에 늘 한 가지씩 밖에 선택할 수 없는 입장이 된다. 이런 것이 싫어서 일찍 계산을 잘했는데, 줄을 잘못 섰더니 계속 인생이 조금씩 미끄러지며 경사진 빙판길을 걷는 것처럼 살아진다.
이 난관은 어떻게 해결될까? 싫은 것 중 한 가지를 고르고, 그것도 선택당하지 못하면 꽝이잖아~! 선택지가 아예 없어지는 시기가 되면 기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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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있던 곳에 돌아가기로 약속했는데 그 일자리가 6개월이어서 가지 않고 다른 곳에 원서를 넣었는데 떨어졌다. 확실하게 익숙하고 고용이 보장된 곳이 있었는데 내 현실적인 삶에 부족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 떡은 내 것이 아닌 거다. 감기가 다 나아가는가 싶더니 오늘 찬바람 쐬고 나갔다가 왔더니 다시 목이 칼칼하다.
이렇게 막막할 땐 어떻게 하면 좋은지 거제 가서 따뜻한 강 선생님께 여쭤보고 올까..... 그 핑계로 얼굴 한 번 보고 올까 싶기도 하다. 명절마다 앓던 감정은 감기 걸려서 아픈 바람에 그냥 지나갔다. 어쩌면 그 감정에 치인 내 몸에 때마침 찾아온 감기가 자리 잡아서 나를 진탕 골리고 갔는지도 모른다. 아직 떠나지 않고 마음 약해졌을 때 한 번 더 앓으라고 눈 부라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건가.
현실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것을 좇을 때마다 변곡점을 하나씩 만든다. 감당해야 할 게 더 많아진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오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변호사가 전화해서는 경찰서에 전화해서 빨리 해달라고 징징거려야 한다고 말해줘서 그제야 미루던 통화를 했다. 너무 힘드니까 손실금액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소를 취하할 생각도 있노라고 형사님 일도 줄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손 놨던 내 사건 파일을 찾아낸 모양이다. 피의자가 연락을 받지 않아서 그대로 뒀다는데, 그 상태로 수배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더니 두 달 걸린다고 한다.
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지 모르겠지만, 그 돈 받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더 노력하고, 지출을 최소화하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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