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4
이 정도 쉰 뒤엔 어김없이 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 달려서 남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연휴가 낀 어느 시기에도 이 정도 쉬면 아쉬워도 정신 차리고 짐을 꾸려야 했다. 이제 그런 긴장감에서 벗어나서 편안하게 쉬어도 된다. 이런 멋진 일요일이라니!
모닝콜을 껐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만 예외로 체크하고 저장한 모양이다. 뭔지 모르게 묘한 느낌에 잠이 깼다. 암막 블라인드를 쳐놔서 충분히 더 자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움찔한 순간 모닝콜이 울리는 거다. 몸이 알고 미리 깼다. 며칠 전에는 잠결에 밖에서 나는 소리에 움찔 놀랐다.
그간 원룸에 혼자 살아서 낯선 소리가 나면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야 한다는 긴장감이 있었다. 새벽에 딸이 화장실 다녀오느라 스위치 딸깔거리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가 났는데 침입자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잠결에도 발동해서 놀랐다. 나는 여전히 동물적인 본능이 강하게 살아있구나. 내 편도체는 강건하군.
새벽에 깼다가 다시 잠든 뒤에 점심 때나 되어서 잠이 깼다. 딸이 주방에서 밥을 새로 안치는 모양이다. 쿠쿠밥솥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마트에서 새로 사다 준 '명란 마요네즈'를 활용한 새 요리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딸이 좋아하는 유부초밥 집 메뉴 중에 스크램블드 에그에 명란 맛을 곁들인 유부초밥이 있다.
한참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 뒤에야 몸을 일으켰다. 딸이 달걀 풀어서 체에 걸러서 아주 부들부들한 달걀을 만들어서 거기에 명란 마요네즈를 살짝 섞어서 음식을 만들어놨다.
양치부터 하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냉장고에서 생들기름을 꺼내서 한 숟갈 먹었다. 아침 루틴으로 굳히는 중이다. 평소엔 삶은 달걀 두 개를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아점을 마무리한다. 사과 한 개 먹고 싶지만 달걀 두 개 먹고 나면 배가 찬다. 오늘은 딸이 특식을 만들었으니 먹어줘야지.
가게에서 주문해서 먹었던 그 맛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맛을 재현했다. 나도 어딘가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그 가게에 다시 가기 어려운데 그 맛이 그리우면 비슷한 맛이 나게 음식을 곧잘 만든다. 평소엔 자고 있을 시간에 깨서 뭔가 새로운 일을 한 것이 고맙다. 그게 뭐든지 생각하고 실행했다는 게 기특하다. 한 가지라도 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시작했으니까.
*
책상 맡에 앉으니 쿰쿰한 냄새가 난다. 어디서 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예민한 내 후각에 남이 맡지 못하는 냄새도 느끼는 터라 정말 냄새가 나는지도 의심스럽다. 먼지 냄새다. 생활 터전이 반씩 걸쳐진 상태에서 한 달 뒤면 완전히 벗어난다. 이 집에서 이 방에서 온전히 살게 될 테니 이사했다고 생각하고 이 방에 있던 짐을 모두 꺼내서 먼지 털고 닦고, 자리를 다시 잡아서 그 집에 가져갔던 짐을 다시 자리 잡게 손을 봐야 할 모양이다.
오늘은 모처럼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이까 푹 쉬고, 내일부터 잡다한 일이라도 부지런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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