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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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두더지 굴처럼 어둡게 해 놓고 침대에 누워서 공중에 띄운 아이패드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딸, 오전이 지나도 깨우지 않으면 일어나는 법이 없다. 아침에 일찍 깨서 혼자 내 방에서 가만히 있다가 10시 반이 넘는 걸 보고는 조용히 딸내미 방문을 열었다.
이 시간쯤엔 일어나서 깨어 있어야 밤에 제때 잠을 잘 수 있지 않느냐, 낮엔 그 굴에서 좀 나오라고 말했다. 읽겠다는 소설책 한 권 사 준 것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도움을 청할 곳에 카톡을 보냈다. 그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온라인에 플랫폼을 만들고 계신다는 선생님께 내 딸이 그 일을 배울 수 있겠냐고 여쭙고, 의논드렸더니 짧지만 명확한 지침을 한 가지 알려주셨다.
우선 관련된 책을 찾아서 읽히고, 블로그를 만들고 연습하게 하면 되겠다. 첫 번째 단계는 거기까지만!
다음 주에 급발진 여행을 계획했으나, 취업이 우선인 것 같아서 급한 마음을 잠시 동여맸다. 딸과 내 거취가 정해진 다음에 여행 가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한동안은 따뜻한 방에서 그 일과 관련한 최소한의 준비를 하도록 지켜볼 참이다. 꼭 뭔가 해내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그것만으로도 딸의 하루가 조금 나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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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친 사람과, 오늘은 그 도서관을 나와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당근 모임에서 두 번 본 사람이다. 정말 오랜만에 사람 얼굴을 마주하고, 문장 끝까지 이어지는 대화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몰랐고, 카페에서 일어서며 그제야 알아차렸다. 내가 조금 들떠 있었다는 것을.
여행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눈이 반짝였던 것 같다. 말로 들은 장면들이 마치 영상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그곳에 있지도 않았는데, 잠시나마 그 풍경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커피잔 옆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들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들었다. 마음이 조금 느슨해지면, 상상력은 자연스럽게 살아난다. 타인의 말도 그제야 귀에 들어온다.
대화 중 어느 지점에서는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하고 싶었지만, 괜히 그 마음이 부담이 될까 봐 엉뚱한 말을 던지고 웃어버렸다. 웃음으로 덮어두는 방식은 여전히 몸에 남아 있다. 한때 무거웠던 내 삶의 장면들은 이제는 나와 거리를 두고 있다. 지금의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으니,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타인의 아픔은 다르다. 그것은 듣는 순간, 아무 예고 없이 마음을 흔든다. 이미 지나온 길인데도, 여전히 진동이 남아 있는 것처럼. 오늘 티타임을 제안해 준 것이 고마웠다. 오랜만에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흘려보냈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하루를 조금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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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로 버섯들깨탕을 끓였다.
딸이 들깨나 깻잎을 먹지 않아서, 집에서는 그동안 한 번도 그런 음식을 하지 않았다. 올해부터는 마음을 조금 바꿨다. 내가 먹고 싶으면, 그냥 해 먹기로 했다.
버섯과 두부를 넣고 들깨를 풀어 끓이니 국물이 금세 구수해졌다. 혼자 먹기엔 아까울 만큼, 맛이 잘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예전에는 이런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음식점에서 한 그릇을 먹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고, 이제는 재료를 사서 집에서 끓여 먹는 데까지 왔다. 입맛도 그렇게, 천천히 바뀌는 모양이다.
그동안은 혼자만 맛있을 음식을 굳이 만들지 않는 것으로 딸의 식탁을 충분히 배려해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려 한다. 내 식성에 맞는 음식을 권하지는 않되, 일부러 피해서 먹지는 않기로. 함께 먹지 않아도 되는 음식이라면, 조용히 나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국을 다 먹고 나니 몸이 따뜻해졌다.
이런 저녁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배려하면서도, 나를 지나치게 비워두지 않는 식사.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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