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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9>/<2026>

짝사랑 전문 시리즈 3

by 자 작 나 무 2026. 1. 29.

* 잠긴 일기 * 2020-11-19

 

어언 십오 년이 넘도록 그의 블로그에 들락거렸다.

2003년에 블로그를 시작했고, 2004년부터는 자기 이야기를 쓰는 블로거로서 교류를 시작했으니, 햇수로 따지면 어느새 십육 년이 훌쩍 넘은 인연이다. 쉽게 흘려보내기 아까웠다기보다는, 언젠가는 한 번쯤 직접 마주했어야 할 사람에 가까웠다. 지난가을,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조금 느슨해졌고 내가 비교적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던 시기에, 결국 그 인연을 현실에서 만났다.

 

긴 시간 동안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한 공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오래 묵은 이야기들을 서로 알고 있다는 점이 불편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래서 더 편했을 수도 있다. 그날의 장면들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조금 떨어져 걸으며 잠시 바라본 그의 얼굴, 또렷한 눈매 위에 얹힌 짙은 눈썹, 언제나 선명한 언어로 생각을 정리해 말하던 태도. 그 모든 것이 기억 속에 나무 열매처럼 하나씩 맺혀 있다. 오래 지켜봐 온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얼굴을 처음 마주하니 괜히 쑥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도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볼 것 같아 말 한마디 꺼내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시간을 내어 함께 있어 준 것만으로 충분히 고마웠다.

 

나는 원래 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어린 딸을 재우고 지친 하루의 끝에서, 심장을 조금 녹이듯 아이스 와인을 두어 모금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며 와인을 마신 경험은 거의 없었다. 그런 내가 그와 몇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골라준 와인을 마셨다.

 

맥주 한 병만 마셔도 다음 날 꼼짝없이 쓰러지는 체질이라 내게 맞는 술은 없다고 단정하고 살아왔는데, 그 가을에 처음 알았다. 와인은 의외로 숙취도 덜하고, 머리도 아프지 않으며, 다음 날을 그럭저럭 사람답게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요즘은 나만의 시간을 정리하듯 혼자 와인을 마신다. 어제는 해 지기 전부터 감바스를 만들어두고, 와인을 천천히 마셨다. 그렇게 음식과 잘 어울리는 술인 줄은 미처 몰랐다. 오늘도 슬슬 와인이 떠오르지만, 잠시 미뤄둔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닿는다면, 와인에 조예가 깊은 그가 권해주는 술을 또 한 번 맛보고 싶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상황이 좋지 않으니, 그다음은 아마 올해 안에는 없을 것이다. 한 번 만나고 싶다는 바람은 이루어졌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언제일지 모를 ‘다음’을 기대하며 감정이 요동치는 것이 싫어, 나는 한 발 물러섰다.

 

오랜 익숙함이 만들어낸 착각으로 상대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 가을, 내 인생 어딘가에서 잔잔한 드라마처럼 다시 재생될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는 것으로, 그동안 마음속에서 이어져 오던 짝사랑의 시간을 조용히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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