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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9>/<2026>

짝사랑 전문 시리즈 2

by 자 작 나 무 2026. 1. 29.

*

2022-05-18

나는 누구와도 깊은 소통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 다른 가족들과는 전혀 연락하지 않고, 오직 딸과만 소통할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연락하면 무엇이든 이야기하지만, 내가 먼저 전화를 걸 일은 거의 없다. 나를 찾는 순간에만 비로소 내가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는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일상 속 어느 순간에 내가 끼어들면 방해가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업무 중에 카톡이나 전화가 오는 것이 불편할 때가 있듯, 친구들도 각자의 삶에 누군가를 불러들이는 것이 편하지 않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걸 알 수 없으니, 나는 그저 그들이 나를 찾을 때만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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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9

나는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유추하는 능력이 부족한 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타고난 결핍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한때 나는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이었다. 말의 뉘앙스 하나, 시선의 방향, 침묵의 길이까지 의미로 해석해버리는 성향 탓에 필요 이상의 고통을 자주 겪었다. 그래서 나는 살아남기 위해 의도적으로 감정 해석의 능력을 낮추는 쪽을 택했다.

 

그 결과, 지금의 나는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거의 읽지 않으려는 사람에 가깝다. 이제는 직설적으로 말해주지 않으면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A가 반복해서 나를 불러내 함께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물론 여러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는 있었지만, 그 상상들이 오해로 번질 가능성을 나는 이미 충분히 경험해본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드러내어 말하는 것만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쪽이 훨씬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상대방이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내 감정은 조금씩 길들여졌고, 그 결과 나는 몹시 혼란스러운 상태에 이르렀다. 해석하지 않기로 한 사람이 느끼지 않기까지 멈출 수는 없었던 셈이다. 그래서 나를 차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저 친구로 남고 싶은 것인지, 동네에서 가끔 밥을 먹는 사이인지, 혹은 다른 방향이 있는지 어느 쪽이든 방향성은 분명해졌어야 할 시점이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없었고, 나는 여전히 상대의 의도를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개인적인 친분을 쌓을 의도가 없는 관계라고 판단했고, 그 관계를 조용히 일단락 지었다.

 

그 사람은 내가 태어나서 밖에서 밥을 가장 많이 같이 먹은 사람이었다. 석 달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관계를 이어가며 사람을 만난 경험이 거의 없는 나에게 그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반복해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상대의 좋은 점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 그 모든 것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절차처럼 느껴졌다.

 

비록 ‘우리’라는 이름의 관계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들 자체는 분명히 좋았다. 그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고, 끝내 닿지 못한 지점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은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조용히 남아 있다. 나는 그저 그때의 모든 순간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이제야 덧붙일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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