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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9>/<2026>

짝사랑 전문 시리즈 1

by 자 작 나 무 2026. 1. 29.

 

시를 읽어주는 남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이름도 모르고, 어떤 표정으로 시를 읽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는 한 달 가까이, 거의 매일 시를 읽어 녹음해 보내주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자고 깨어 보면 그의 목소리는 이른 아침에 소리 없이 늘 일찍 도착해 있었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그의 목소리는 늘 낮고 조용했다.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문장의 끝을 살짝 눌러 읽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 하루가 급히 시작되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후에 보내온 목소리는 한결 밝고 상쾌했다. 숨이 가벼웠고 말은 조금 더 멀리까지 나아갔다. 같은 사람이 같은 시를 읽고 있는데도 시간에 따라 이렇게 다른 결이 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가 보낸 시간대를 가늠하며 녹음을 열어보게 되었다.

그는 거의 매번 게이샤 원두로 커피를 내려 마신다고 했다. 특별한 고백처럼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 말은 오래 남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마신다는 그 원두를 사서 낮에 커피를 내려 마시기 시작했다. 은은한 향이 먼저 오르고 맛은 온몸으로 스미듯 천천히 따라왔다. 그 향은 그가 시를 읽던 시간대를 닮아 있었다.

처음에는 시가 좋아서 들었다. 그러다 점점 시는 뒤로 물러나고 목소리가 남았다. 목소리는 사람을 앞서게 하지 않는다. 얼굴을 요구하지도, 관계를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저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을 조용히 남긴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어제는 그가 읽어주던 시집을 찾아 시 한 편을 골랐다. 음악을 아주 낮게 깔고 시를 읽었다. 그리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서툰 목소리였다. 숨이 먼저 들렸고 문장마다 잠시 멈췄다. 그래도 괜찮았다. 누군가의 방식을 흉내 내며 처음 해보는 일을 하는 동안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워졌다. 설렘은 컸지만 어디에도 넘치지 않았다.

그는 내 감정을 모른다. 아마 앞으로도 알지 못한 채로 있을 것이다. 이 마음은 그에게 닿을 필요가 없고 무언가를 바랄 이유도 없다.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긋나지 않았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은 오히려 오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재생 버튼을 누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굳이 불러보지 않는다. 다만 이 정도의 거리에서 이 정도의 온도로 마음이 머무를 수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남아 있다.

 

 

 

사랑 고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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