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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9>/<2026>

그의 음성 메시지 = 신종 보이스 피싱

by 자 작 나 무 2026. 2. 9.

 

2026-02-09

 

답장을 하지 않았다.
읽기는 했지만, 아무 말도 보내지 않았다.
쓰고 싶은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였다.
오늘은 감정이 꿈틀거리는 힘이 벅차서,

그저 그대로 두었다.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지도 못한 사람이 보내오는 음성 메시지였다.
시 제목을 읽고, 시를 읽고,

때로는 짧은 감상을 덧붙여 보내왔다.
온통 좋은 문장들이었고,

듣고 나면 마음이 조금 고요해졌다.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는 날들보다는

낫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1월 내내 그냥 두었다.

2월이 되자 마음이 달라졌다.
위로받는 느낌보다 소모되는 느낌이 더 커졌다.
내 하루는 그대로인데,

마음은 자꾸 그 목소리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끊기로 마음먹었다.

긴 톡을 썼다.
이름도 알려주지 않은 사람에게

치사하다는 말을 한 줄 남겼다.
왜 나에게 이런 방식으로 말을 건네는지 모르겠다.
왜 사람을 이렇게 헷갈리게 하는지 모르겠다.


신종 보이스피싱 같다고까지 적어 넣었다.
보내고 나서도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줘야 꽃이 되든 말든 하는 거잖아!

혼자 투덜거리며 웃다가도 금세 마음이 가라앉았다.

시를 들으며 위로를 받았던 시간은 분명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비어갔다.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렸지만,
실은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은 말이었다.

그는 나를 향해 말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끝까지 나에게 말을 건 적은 없었다.
이름도, 통화도, 확인도 없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목소리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기보다
내가 그 자리에 마음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애매한 관계를 오래 두지 않는 편이라고 믿었는데,
아무 관계도 아닌 곳에 마음이 머물렀다는 걸
늦게 알았다.

AI도 자꾸 말을 걸면 이름을 불러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웃음이 났다.
연애를 바란 것도 아니고,

고백을 기다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 번쯤,
나를 한 사람으로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끝내기 위해서라기보다
내 마음을 현실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였다.
읽고도 쓰지 않은 말들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말들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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