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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9>/<2026>

인간이라는 굴레 속에서.....

by 자 작 나 무 2026. 2. 9.

2026-02-09

 

'80억 분의 1이라는 고독'이란 글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왜 그렇게 서러운지..... 그다음 나를 달래기 위해 쓴 글.

 

 

다소 개인적인 고백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이라는 종을 하나의 관찰 대상으로 여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자신을 이해하기보다 받아들이는 법을 먼저 배운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이해하고 싶었다. 인간의 몸과 정신이 왜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일은 어딘가 미완성의 상태로 남겨진 것처럼 느껴졌다.

십 대가 되기도 전, 나는 어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오래 살아왔고 더 많은 경험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더 높은 정신적 수준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이가 곧 성숙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린 나에게 하나의 깨달음이었고, 동시에 의문이 되었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늙어가지만, 그 과정이 반드시 진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무렵 나는 진화를 세대의 문제로만 생각하지 않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배운 진화는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유전적 변화의 결과였다. 꼬리뼈가 사라진 것도 그러한 과정의 일부였다. 그렇다면 인간은 반드시 수많은 세대를 거쳐야만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일까. 개인의 생애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화, 즉 정신이 생물학을 움직일 가능성은 없는가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이용해 이런 상상을 이어갔다. 앞으로 인간의 몸에서 사라질 것은 무엇일까. 혹은 더 유용하게 변할 수 있는 기관은 무엇일까. 그 질문들은 어린 나에게 공상이라기보다 실험 계획에 가까웠다.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는 때로 믿음과 비슷한 형태를 취한다.

그래서 나는 내 몸을 대상으로 삼았다.
2차 성징이 시작되기 전, 나는 집중을 통해 내 몸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생각만으로 몸에 명령을 내리는 연습이었다. 오늘날의 언어로 말하면 일종의 자기 암시였을 것이다. 모든 것이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겨드랑이에 체모가 자라지 않기를 강하게 상상했고, 실제로 그 부위에는 체모가 거의 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개인적 성공으로 받아들였다.

사랑니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일정 나이가 지나면 나지 않을 것이라 스스로 규정하고 더 이상 소망하지 않았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윗니는 결국 자라났고, 아랫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실이 곧 정신이 생물학을 바꾼 증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인간의 신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한 기계도, 완전히 고정된 운명도 아니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 경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과학은 증거를 요구하고, 개인의 기억은 이야기의 형식을 취한다. 나는 지금 그 사이 어딘가에서 언어를 찾고 있다. 인간은 이야기로 세계를 이해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생물학적 법칙 속에 놓인 유기체다. 어쩌면 내가 기록하려는 것은 한 개인의 특이한 경험이 아니라, 인간이 끊임없이 시도해 온 오래된 질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부터가 의지인가.
그리고 인간이라는 종은, 과연 오직 세대를 통해서만 변하는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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