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6
인생의 공적인 일상에서 은은하게 물러나는 일.
내게 은퇴란 그런 의미다.
일을 완전히 끝낸다는 말보다, 공식적인 직함이 붙은 자리에서 조금씩 발을 빼는 일에 가깝다. 더 이상 나를 증명하기 위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누군가의 일정과 요구에 맞추어 몸을 밀어 넣지 않아도 되는 상태. 내 삶을 다시 내 호흡의 속도로 돌려놓는 일.
요즘은 체력의 한계를 자주 느낀다. 큰 병이 난 것은 아닌데도, 이 일상을 계속 같은 방식으로 이어가는 것이 어쩐지 위태롭게 느껴진다. 어제는 조퇴할 수 있는 일정을 미리 알고 있었고, 오후에는 그대로 통영으로 달릴 생각이었다.
딸이 거제에 발령받아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버스표를 샀다기에, 그 표를 물리게 하고 나와 같이 가자고 꼬드겼다. 작년에 통영에서 혼자 한해살이를 하며 들고 갔던 짐을 2월에 이사하며 다 옮기지 못해서 빈집에 짐 몇 보따리가 남아 있었다. 사실 내가 찾는 물건이 그 속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마음이 그쪽으로 갔다. 내가 찾는 옷이 거기에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결국 나는 이번 주에 반드시 통영에 가야만 할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다.
목요일에는 갑자기 날이 더워졌다. 내가 사는 동네의 한낮 기온은 거의 30도에 가까웠다. 학생들을 챙기느라 종일 땡볕 아래를 오가고, 신경 써야 할 일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체육한마당이 끝난 뒤에는 그대로 드러누워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날 예정된 일정 때문에 마음대로 무너질 수도 없었다.
그 연속선상에서 체력은 바닥났고, 면역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점심 무렵 딸을 만나 운전을 시작했는데, 세 시간의 길이 너무 버거웠다. 길 위에서 눈 감길 것 같았고, 어떤 것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결국 짐만 챙겨 곧장 돌아오려던 계획은 애초부터 지킬 수 없는 계획이었다.
하루 전날 나현이네에 연락했더니, 뜻밖에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느라 입원 중이라고 했다. 통화할 때는 담담하게 들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딸에게 전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대성통곡을 했다. 바닥난 체력이 그 소식 하나로 완전히 지하 세계로 꺼져든 것 같았다. 몸도 힘든데, 마음까지 갑자기 무너진 것이다.
미수동으로 이사한 친구에게도 미리 연락했다. 이렇게 석 달 만에 다른 볼일로 통영까지 갔는데도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돌아오면, 언제든 다음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룻밤 그 집에서 머물렀다. 체력이 되면 얼굴만 보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방식조차 내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했다.
오늘 낮에는 시락국밥집에 가서 밥 한 그릇씩 먹고, 뜨거운 커피를 사서 공원에 앉았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나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공사장에서 넘어온 독한 페인트 냄새까지 더해지자, 순식간에 중환자처럼 기운이 빠졌다. 오후에 서울에서 나현이네가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그곳에 머물며 기다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을 때 집으로 돌아와 쉬어야 했다. 그래도 돌아오기 직전, 고속도로에서 멀지 않은 마트에 들렀다. 반건조 생선도 사고, 그 동네에서 키운 얇은 부추도 한 봉지 샀다. 이상하게 그 부추가 눈에 들어왔다. 꼭 사 오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고구마와 달걀을 쪄서 몇 개 먹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러다 식탁 위에 올려둔 부추가 생각났다. 부추전을 만들까 싶었지만, 재료를 이것저것 준비하는 일도, 밀가루를 섞는 일도 번거로웠다. 그래서 달걀만 깨고 부추를 듬뿍 넣어 부쳤다. 통영 시내 어느 골목에 있는 ‘새집’이라는 해물탕집에서 반찬으로 내주던, 부추 향이 강한 달걀부침이 떠올랐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비율로 부추를 넣어야 그 맛이 났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는데, 그것을 두 번 부쳐 먹고 나니 겨우 앉을 기운이 났다. 딸은 내일 돌아오기로 했다. 어제 통영에 무리하게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몸은 훨씬 회복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힘들어도 나서야 할 때가 있는 모양이다.
석 달 동안 걸음하지 않은 빈집은 창문마저 꼭 닫혀 있었다. 그런데도 군자란은 바짝 마른 화분 속에서 여전히 생명을 머금고 있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놀라웠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마음에 걸려 했던 것은 짐 보따리나 옷이 아니라, 그 화분에 담긴 생명이 나의 부주의로 죽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물을 줄 수 있는 만큼 듬뿍 주었다. 페트병 뚜껑에 구멍을 하나 뚫고, 물을 채워 화분 귀퉁이에 세워두고 왔다. 추울까 봐 닫아두었던 베란다 창도 조금 틔워두었다. 두어 달이 지나도 무사하기를 바란다. 이제는 계속 관리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그 화분을 연결해 주어야겠다. 문제는 아직 그럴 만한 대상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직함이 있는 직장에서는 이제 그만 슬그머니 발을 떼고 싶다. 이렇게 힘든데도 참고 견디며 밥벌이를 이어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2주 뒤 검사 결과를 보러 다시 서울의 그 병원에 간다는 친구가 전화기 너머로 조용히 말했다.
할 수 있는 만큼 보험을 많이 들어놓으라고.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진작 그 일을 그만두었어야 할 친구였다.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녀들도 다 장성해 경제적으로 독립했는데도 그는 일을 놓지 못했다. 노후를 더 넉넉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자식들에게 뭘 더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계속 버텼다.
나에겐 그럴 여력도 없고, 그렇게까지 내 인생을 무리하게 이어 늘릴 생각도 없다. 더 오래 버티는 것이 언제나 더 성실한 삶은 아니다. 때로는 그만두는 일이야말로 자신에게 남은생을 지키는 방식일 수 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시작해서, 다른 삶을 살 것이다.
이제는 그만두어야 할 만큼 지친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할 만큼 분명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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