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05-16
어제 그 집에서 화분 아래 받쳐둘 큰 비닐봉지를 찾느라 물건을 뒤적이다가, 비닐봉지에 싸여 다른 가방 속에 다시 넣어 보관된 옷 하나를 발견했다. 카디건이었다.
이 색깔의 실을 사서, 내 손으로 이 옷을 뜬 지는 30년도 훨씬 넘었다. 목 부분의 실이 조금 풀려 있었지만, 나머지는 엊그제 막 떠놓은 옷처럼 말끔했다. 시간은 사람에게는 가차 없지만, 어떤 물건 앞에서는 이상할 만큼 조심스러워지는 모양이다.
나는 참 착한 딸이었다.
손에 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그걸로 색깔별로 실을 샀다. 그리고 가족들 옷을 하나씩은 꼭 떠서 선물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고, 특별히 배운 적도 없었다. 기본만 알면 책을 보거나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어떻게든 만들어냈다. 나에겐 그런 손재주가 있었다.
아주 어릴 때 친할아버지가 그랬다. 할아버지는 대나무를 쓱쓱 깎아 방패연을 만들어주셨고, 오빠가 가지고 놀 만한 물건들을 이것저것 만들어주셨다. 우리 옷도 손수 떠주실 만큼 다정한 분이었다. 아마 내 손의 어떤 재주는 그분에게서 흘러온 것인지도 모른다.
심해잠수사였던 할아버지는 벌이가 좋았다. 집도 여러 채 샀고, 동네에 땅도 많이 샀다고 했다. 그것을 잘 지키고 관리할 가족만 있었다면, 우리 집안은 제법 떵떵거리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는 구멍이 너무 크고 많았다. 재산은 오래 머물지 못했고,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런 집안에서, 내가 30년 전에 가족을 위해 마지막으로 떴던 옷이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옷을 몇 번이나 입으셨는지 알지 못한다. 그 옷을 내가 떠서 드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는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옷은 그 집에 남아 있었다. 비닐봉지에 싸인 채, 어떤 설명도 없이.
생각해보면 나는 정성껏 한 올 한 올 뜬 옷을 가족 모두에게 선물함으로써, 나도 모르게 현생까지 이어진 어떤 업보를 다 치른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각자의 삶으로 흘러갔다. 특별한 사건도, 큰 싸움도 없이.
지금 내게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딸뿐이다.
작년에 남동생네 가족을 20여 년 만에 처음 만났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니었고, 누구와 크게 다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가족이라는 관계는 어느 틈엔가 조용히 정리되어 있었다. 어떻게 살아 있는 가족들이 이렇게 아무 소리 없이 멀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번 생에 얽혔던 지점들이 하나씩 풀려나갔다. 마치 서로에게 더는 갚을 것도, 받을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처럼.
나에겐 그 어떠한 애착도 없었던 것일까.....
나는 의외로 냉정한 사람이다. 함께 사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에게는 한없이 다정하지만, 필요 이상의 정을 나누는 사람은 아니다. 오지랖처럼 흘러넘치는 정을 믿지 않는다. 정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삶을 붙들고 흔드는 일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가족을 떠난 것인지, 가족이 나를 떠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오래전에 이미 서로에게서 빠져나와 있었고, 다만 그 사실을 늦게 확인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비닐봉지 속 카디건은 이상한 증거물처럼 남아 있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오래도록 애쓴 적이 있었다는 증거.
가족이라는 이름을 믿고, 내 손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준 적이 있었다는 증거.
그리고 이제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거의 자유로워졌다는 증거.
목 부분의 실이 조금 풀린 카디건을 보며 생각했다.
이 옷은 아직 남아 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이제 없다.
그 시절의 가족도 없다.
다만 한때 내가 참 착한 딸이었다는 사실만,
낡지도 않은 옷 한 벌처럼 조용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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