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종량제 봉투를 사러 길 건너 동네 하나로마트에 다녀왔다. 나는 일부러 그 동네를 가끔 찾는다. 재래시장과 허름한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르는 곳. 반듯하고 말끔한 길이 주는 편안함도 있지만, 가끔은 그런 옛 동네가 주는 느슨함이 더 마음에 든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얼굴, 오래된 간판들 사이에 있으면 나도 잠시 풀어진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바로 앞이 하나로마트다. 길 건너 도너츠 가게에서 따뜻한 대파도넛을 몇 개 사 들고 돌아오면서, 신호에 걸릴 때마다 한 입씩 베어 먹는다. 별일 아닌데도 그 순간이 묘하게 재미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이런 사소한 즐거움은 여전히 유효하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딸기 한 상자를 장바구니에 담고, 고기 진열대 앞에 섰다. 할인 딱지가 붙은 고기들을 이것저것 살피고 있는데, 말쑥하고 인상 좋은 남자가 장바구니를 들고 내 옆에 섰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이미 충분한데도 괜히 고기를 더 고르는 척을 했다. 아무도 없으니 편하게 고르다 말고, 살까 말까 망설여질 땐 사지 말자는 평소의 원칙을 떠올리며 자리를 뜨려던 참이었다.
그가 내가 집었다가 내려놓은 등갈비를 들고 잠시 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할인하는데 사갈지 묻는 목소리. 싱글은 아니구나. 그 순간 마음이 싱겁게 식었다. 바람 빠지는 소리처럼. 오늘 도서관에 가면서는, 정말 잠깐 허튼 생각을 했다. 단골 도서관에서 혹시 인상 좋고 혼자인 사람을 보게 되면 커피 한 잔 같이 하자고 말해볼까, 그런 생각 정도. 생각은 자유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나이를 알 수도 없고, 혼자인지도 확인할 수 없는데 말 한마디 잘못 건넸다가 괜히 불편해지면 단골집에도 마음 편히 못 갈 것 같아서, 늘 혼자 웃고 말 뿐이다. 아니, 정확히는 실행하지 못한다. 말 걸고 싶을 만큼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을 실제로 만난 적이 없으니까.
몇 주 전에는 당근 모임에서 얼굴을 익힌 사람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고, 그 다음에 약속을 잡아 커피를 한 잔 마신 적이 있다. 이미 한 번 본 얼굴이라 낯설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그분이 여행지로 냐짱을 추천해줘서, 나는 망설임 없이 겨울 여행지를 그곳으로 정했다. 동성이었다면, 다음엔 내가 커피를 산다고 먼저 연락했을 텐데. 그게 뭐라고, 참 어렵다.
여행은 어땠느냐고 안부 정도 묻는 건 어렵지 않을 텐데도, 나는 상대를 잘 모를수록 관계를 망설이는 사람인 것 같다. 한 번 스치고 말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편하다. 웃기도 쉽고 말도 잘 나온다. 그런데 다시 볼 사람, 이어질지도 모를 사람 앞에서는 어떻게 가늠해야 할지,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생각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이제야 외로움이 슬며시 몸에 닿는 시기가 온 모양이다. 복잡한 걸 바라는 건 아니다. 그동안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도 잘 지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 마음을 조금 기대어도 괜찮은 사람, 감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용히 내 안에서 계절이 하나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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