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8
어제는 갈아놓은 고기에 두부 으깬 것을 섞어서 냉장고에 남아있는 채소 몇 가지를 다져 넣고 전을 부쳤다. 딸이 어제오늘 이틀 잘 먹더니 입맛이 돋는지 문득 카레가 먹고 싶다고 한다. 다진 고기를 사면서 혹시나 하고 한 팩 사놓은 고기를 카레에 넣으면 맛있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부족한 채소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요즘 유행하는 무슨 과자를 하나 샀다. 그 가격에 결코 사 먹고 싶지 않았지만, 딸이 몇 번 들먹이는 것으로 보아 호기심 충족은 시켜줘야 할 것 같았다. 알이 그리 크지도 않은데 가격이 싸지도 않다. 그나마 아주 크게 만들어서 내가 산 가격보다 더 비싸게 받는 모양이다. *마트 팝업 가게에서 그런 걸 판다.
상상한 것과 똑같은 맛이다. 둘이서 반쪽씩 나눠먹었다. 더 줘도 먹고 싶지 않은 달아서 미칠 것 같은 맛이다.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하다. 굳이 그 돈을 내고 사 먹기엔 아깝다. 건강에 좋은 것도 아니고, 가격도 사악하다. 딸이 친구를 들먹이며 그 재료를 사다가 만든다는 말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궁금한데 돈 쓰긴 아까워서 참는 것 같아서 내가 대신 질러줬다.
*
저녁에 만든 카레를 딸이 몇 번씩 덜어서 먹는다. 정말 카레가 많이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김치를 곁들여 먹고 싶은데 김치를 꺼내기도 귀찮은지, 입으로만 김치 노래를 한다. 김치 꺼내주는 게 뭐 어려운 일이랴. 먹고는 싶지만 귀찮아서 냉장고에서 김치도 꺼내지 못하는 딸에게 군말 없이 김치를 꺼내서 그릇에 덜어줬더니 아주 신나게 먹고 또 먹는다.
오랜만에 엄마 노릇했다.
*
1년 정도 밖에 나가서 사는 일을 종종 해 건너 한 번씩 하다 보니 집에 덜어서 쓰던 짐이 많아져서 정리할 때마다 신경 쓰인다.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딸이 없는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단 어딘가에 가서 한해살이 하듯 새로운 도시에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에서 두어 번 집이 아닌 곳에 방 얻어서 살아봤다.
이제 겨우 딸과 합친 살림,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딸이 시집가면 이렇게 함께 살아보는 것도 더 할 수 없는 일이다. 밥벌이 때문에 그렇게 떠돌 결심을 한 것은 작년 이맘때 읽은 아래 시의 영향이 상당히 컸다. 뭉클해진 감정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게 열 달가량 집을 비웠다.
S대를 나왔으나 글 밥 먹고 사는 아들이 취업하지 못했을 때 혼자인 엄마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저런 것일까...... 가슴이 먹먹해졌다가, 아들 마음이 되었다가 다시 엄마 마음이 되기를 반복하며 울컥했던 저 시를 읽고 나도 어쩔 수 없으니 긴 출장이라도 가야 할 것으로 믿었다.
'밥벌이 앞에서는 성고문이라도 당할 용의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는 대목에서 침을 삼키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퍽퍽한 현실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일 거다. 작년 겨울엔 왜 그 대목에 걸려서 이런 고생을 사서 했나 싶기도 하지만, 덕분에 향수병은 잠잠해졌다. 문득 눈만 뜨면 고향 바닷가에 달려가고 싶었던 답답함은 덕분에 덜었다.
엄마는 출장 중
또 석 달 가량 집을 비우신단다
산 사람 목에 거미줄 치란 법은 없는 모양이군, 나는 생각했다
집 앞이 집 앞이니만큼
질펀한 데서 허부적거리다가 저녁에 들어오니
그저께 밥상보 위의 흰 종이
| 머리라도 자주 빗어넘기고 술 한잔도 두세 번에 나누어 마시거라 엄마 씀. 잠은 좀 집에서 자고 |
아무리 이래도 저래도
한世上 한平生이라는 각오를 했지만
내 삶이 점차 생활 앞에서 무릎 꿇고 있다
한량 생활도 사는 건 사는 건데 이건 아닌 것 같고
치욕 없이 밥벌이할 수 있으리요마는 나는 이제 밥벌이 앞에서
性고문이라도 당할 용의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밥상 앞에서
먹고 사는 일처럼
끊을 수 있는 인연이 따로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감기 들면 몸살을 앓으시는 어머니
아! 한가하면 딴생각 드는 법
또 석 달 가량 나는 自由다,라고 외치자꾸나, 내 젊음에 후회는 없다,라고
그런데 냉장고에 양념된 돼지 불고기가 있어서 그만
엄마, 소리만 새어 나왔다.
詩. 김중식
*
오늘 시 읽어주는 사람이 보내준 시를 듣고, 다시 읽다가 옮겨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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