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1
일터에서 떠나온 지 이제 20일째, 종종 업무를 보긴 했어도 대부분의 중요한 일을 최대한 방학 전에 끝내고 와서 편하게 지냈다. 짧은 여름 방학 기간 동안 1학기 이수 완료된 과목 생기부 쓰느라고 쉬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 겨울은 확실히 쉴 수 있어서 좋다. 이제 열흘 남짓 지나면 또 일주일 정도 일하러 다녀와야 하지만 이만하면 좋다.
좀 쉬고 나니 드디어 머릿속에 꽉 찼던 긴장이 풀리고 노곤해져서 아침에 늦잠도 자게 됐다. 어제 저녁에 딸이 식탁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아이패드로 새로 나온 시즌 '솔로 지옥'을 틀었다. 애들 나오는 것 봐서 뭐 하나 생각하고 이번 시즌은 열어보지 않았는데, 딸이랑 같이 보니까 은근히 재밌다.
밤에 내 방 침대에 누워서 4편 나온 걸 다 보고야 잠들었다. 감정 이입하기엔 너무 어려서 전혀 공감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는데, 유쾌하게 많이 웃었다. 반 농담삼아
나: "우리 **이도 얼굴만 좀 작았으면 저런 데 한번 나가보는 건데......"
딸: "저 애들만큼 예쁘고 날씬했으면, 엄마가 그런 말 안 해도, 내가 먼저 출연 신청했을 거야."
무대 공포증 운운하던 애가 그 많은 카메라 앞에 서겠다고? 와우~ 재밌겠다! 취업 시험 합격하고 나면 다른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 신청하겠다는 말까지 한다. 나에겐 없는 대단한 용기다. 좋은 사람 만나는 데에 그만큼 적극적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
최근에 많이 아팠다는 글을 읽었고,
집안에 슬픈 일이 있었다는 글도 보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마음은 먼저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
괜찮은지, 잘 견디고 있는지,
그저 사람이 사람에게 하듯
안부를 묻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편하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친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모르는 사이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관계.
그래서 결국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란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덮어두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런 관계가 가장 불편하다는 걸
요즘 들어 자주 실감한다.
*
작년 봄에는
동네 맛집을 많이 다녔다.
이 지역에 먼저 정착한 선배가
좋은 곳들을 종종 데려가주었다.
그 시간들은 분명 편안했고,
음식도 좋았다.
하지만 성별이 다르면
밥을 한두 번 같이 먹는 것만으로도
그다음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갑자기 어려워진다.
편하게 동네 모임에서 마주치면
안부를 묻고 인사 정도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귄 것도 아니고,
밥만 몇 번 같이 먹었을 뿐인데
왜 그렇게 일이 꼬였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는
관계를 이어가는 법도,
발전시키는 법도,
조용히 지속하는 법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조심하고,
그래서 더 멀어지고,
그래서 결국
마음만 남겨두고 물러나는 쪽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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