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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9>/<2026>

질문하며 살아온 시간

by 자 작 나 무 2026. 1. 22.

2026-01-22

감정을 다스려야 할 때, 감정이 울렁거릴 때 나는 글을 썼다. 글은 내게 정서의 배출구이자, 혼란을 정리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른 종류의 글을 써도 될 시점에 도달했다고 느낀다.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쓰는 글 말이다. 질문의 방향을 내면에서 바깥으로 옮겨보려 한다.

내가 처음 컴퓨터를 만진 것은 20대 중반(90년대 초)이었다. 컴퓨터 관련 전공을 택한 오빠가 방학 때 집으로 가져온 애플 컴퓨터가 시작이었다. 그 무렵 나는 피씨 통신을 시작했고,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처음 접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두꺼운 모니터가 책상 위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기술은 원시적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질서와 논리를 감지했다.

나는 늘 작동 원리를 알아야 안심하는 성향이었다. 그래서 컴퓨터를 사용하기 전에, 먼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부터 알고 싶었다. DOS 관련 서적을 붙들고, 끝이 보이지 않는 명령어들을 독학했다. 실용적인 목적은 없었다. 어디에 써먹을 계획도 없었다. 다만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이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이 태도는 기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인간의 삶 역시 내게는 이해의 대상이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질문을 품고 있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존재하는가. 왜 사람마다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가. 이 질문들은 철학 교과서보다 먼저 내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삶을 지속하는 것은 비합리적으로 느껴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여러 세계관을 접했다. 그중 하나는 신의 섭리에 의해 세계가 창조되었고, 각자의 삶은 이미 정해진 틀 안에 있다는 설명이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더더욱 질문해야 했다. 왜 나는 이 틀에 속한 존재인가.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처럼 보였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인간의 삶을 관찰했고, 동시에 내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직접 묻고 싶은 질문들이 많았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그 ‘이해’란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만으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정당화할 수 있는가. 나는 기다리기보다 앞당기고 싶었다. 가능한 한 빨리 그 이치를 이해하고 싶었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수렴한다.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이제 나는 그 질문을 감정이 아니라, 이해의 언어로 다시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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