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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9>/<2026>

와인 모임.... 그리고 Flowers

by 자 작 나 무 2026. 1. 26.

어제저녁, 동네 모임에 다녀왔다.

어제 모임은 커피와 와인을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내가 와인 모임에 나가는 날이면 딸은 늘 끝날 무렵 나를 데리러 온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런데 같은 테이블에 앉은 분이 “음악이 없어서 아쉽다”며 2차를 제안했다. 그 말 한마디에 자리가 조금 더 넓어졌다.

연말 모임에서 이미 알고 지냈다는 옆자리 회원까지 합해 다섯 사람이 함께 그분의 집으로 갔다.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그분이 취미로 모아둔 오디오 시스템이었다. ‘넘사벽’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았다. 마침 가족들은 템플스테이를 가고 없어서, 우리는 눈치 볼 일 없이 음악과 와인과 대화를 천천히 즐길 수 있었다. 어른들이 모여 소리를 낮추고 시간을 늘리는 자리였다.

1차 모임이 끝날 즈음 딸이 와서 차를 가지고 갔고, 2차가 끝난 뒤에는 집에서 다시 차를 끌고 나와 나를 데리러 왔다. 혼자 운전하는 걸 무서워하던 딸이 어제는 처음으로 아파트 주차장에 혼자 주차하고 다시 시내를 달려 또 혼자 주차했다. 평소라면 굳이 나서지 않을 일을 내 모임이 계기가 되어 해내곤 한다. 그런 순간들이 가끔은 대견하고, 또 묘하게 고맙다.

어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좋았다.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함께 음식을 나누고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니 자연스럽게 편안해졌다. 다음 모임이 벌써 기대된다.

자리를 옮기며 두 번 와인을 마신 탓에 꽤 과음했다. 두 번째 자리에서는 음악이 너무 좋아 감정이 그대로 풀어져 버릴 것 같았다. 좋은 노래는 가사가 또렷이 들린다. 이미 와인으로 무장해제된 상태였던 나는, 음악 앞에서 완전히 녹아내렸다. 누군가는 무작위로 제공되는 와인이 아니라, 좋은 와인을 가끔 모여 마시는 소수 모임을 제안했다. 이미 그 모임에 속해 있다며 권해주었는데, 너무 좋은 자리라 감사했다. 오십 대 초반부터 육십 대 초반까지의 사람들이 모여 잔잔하게 대화만 나눴을 뿐인데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소소한 행복이 분명히 남았다.

그분과는 편안하게 악수하고 헤어졌다. 다음에 우연히 마주쳐도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날 그분이 신청한 ‘Flowers’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였고, ‘가족 사진’이라는 노래에서는 눈물이 글썽였다. 티슈로 눈물을 닦다가 들켜 무안해 웃어버렸다. 음악 따라 울고 웃는 나는 감정이 풀릴 때면 지나치게 다정해지는 사람인 것 같다.

 

 



모임 자리에서 인사를 나눌 때, 은갈치 패션이라 불러도 될 만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예쁜 분이 있었다. 화장실에서 마주쳐서는 예쁘다며 찬사를 쏟아냈다. 취기가 오르니 생각만 하던 말들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나왔다. 카페 오마카세 자리에서도 우리 팀 일원을 보며 또 예쁘다고 연거푸 말했다. 그 순간, 내가 남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성이 웃으며 하는 말이니 괜찮았겠지만, 이성이 그랬다면 초면에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싶어서 혼자 웃음이 났다.

과음한 탓에 오늘은 하루 종일 침대와 한 몸일 줄 알았다. 그런데 방탈출 카페에 놀러 갔던 딸이 예상보다 일찍 돌아왔다. 일행 중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있어 다른 곳에서 놀다 그냥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콩나물국을 끓여주겠다고 나섰다. 한 번도 끓여본 적 없는 아이가 그런 말을 하는 게 고마워서 콩나물만 씻게 하고 다듬어둔 재료로 내가 국을 끓였다. 몇 사발 국물을 들이키자 땀이 확 나며 몸이 풀렸다.

덕분에 도서관 문 닫기 전에 부랴부랴 책을 빌리러 다녀왔다. 내일이 휴관일이라 오늘 못 빌리면 괜히 불안해질 것 같았다. 씻고 화장까지 하고 나선 김에 저녁은 딸과 외식하기로 했다. 처음 가본 낙지집에서 낙지볶음을 시켰는데, 딸이 갑자기 머리가 많이 아프다며 힘들어했다. 급히 먹고 집으로 돌아와 진통제를 먹이고 잠시 쉬게 했다. 괜찮아진 걸 확인한 뒤에야 나도 완전히 긴장을 풀고, 침대에 누워 릴스를 보며 빈둥거렸다.

어제와 오늘은 그렇게 이어졌다.
와인과 음악,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콩나물국과 도서관과 낙지볶음까지.
특별할 것 없는 장면들이었는데, 돌아보니 마음이 조금 넓어졌다.
아마 이런 날들이 모여, 내가 나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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