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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9>/<2026>

추억 여행

by 자 작 나 무 2026. 1. 26.

오늘은 추억 여행 중이다.

블로그에 비공개로 전환한 글 중에 문득 읽고 가슴 뛰는 글, 감정 울렁이는 글을 몇 가지 옮겨볼까 한다.

2006-09-28,   1989년의 일을 회상하며 쓴 일기

 


문득 하숙집 생각이 났다. 여섯 해나 살았던, 그 대학촌의 하숙집.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던 집이었다.

1학년 가을 학기쯤이었을까.
내가 살던 하숙집에 월식하러 왔던,
유난히 얼굴이 하얗던 그 남자.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을
모두 아무개 오빠라고 불렀던 나는
나이에 비해 어리숙하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맹탕이었다.
그래도 맑고, 나름대로는 깊어 보였는지
그런 나를 좋게 봐주는 사람도 있었다.
여드름 때문에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던 터라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괜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지
먼저 의심부터 하던 소심한 사람이었다.

음악을 듣다가
문득 그의 하얀 손이 떠올랐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던 그는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고 했다.
하숙집에는 늘 사람이 많아서
밥때마다 식탁에 둘러앉은 얼굴들도 제각각이었는데,
그는 이상하게도 눈에 띄었다.
말수가 많지도 않았고,
앞에 나서지도 않았는데
유난히 반짝이는 사람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또렷하고 야무진 인상.
그해 겨울 방학 이후로는
다시 만날 수 없었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그 짧은 동안
나는 아마도
가슴이 살짝 뛰는 어설픈 짝사랑을 했던 모양이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그 창백한 얼굴은 아직 선명하고,
목소리가 좋아서
어린 마음에 괜히 더 멋있게 느껴졌다는 것까지
또렷이 기억난다.

나에게 유난히 친절했던 그는
지금은 어디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을까.
하숙집에서 만났던 선배들과 후배들의 안부가
문득문득 궁금해질 때마다
나는 이렇게 추억 속으로 잠시 들어가
그 기억만으로도 한동안은 행복해진다.
그들은 나를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하숙집 식구들과 함께
밤나들이를 나갔던 그날 밤,
강변의 나이트클럽,
푸른 조명 아래에서
얼굴을 붉히며 함께 추던 블루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쑥스럽고,
아직도 어딘가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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