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6
충전이 좀 된 모양이다. 바쁘게 쫓기는 일 없으니 슬슬 잡념 망상이 똬리를 튼다. 빌려온 책이나 열심히 읽자.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호사가 아닌가. 궁금한 게 없었는데, 살아남는 기술이 부족해서 아직 알아둬야 할 게 많다.
그보단 내가 이해한 것을 남이 알 수 있는 언어로 꺼내서 쓰려면 다양한 지식과 다양한 언어의 조합이 필요하다.
당장 쫓기는 일 없고, 아픈 데 없으면 어떻게든 살아진다. 걱정하지 마.
*
이제야 딸이 조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둘 다 취직을 못 하게 되는 건 아닐지, 그 생각이 슬그머니 마음에 올라왔나 보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준 책을 읽고 있다.
그 책으로 무언가를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 노력해보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맙다. 자기 삶인데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휘청거릴 수 있는 나이다.
입맛이 없다는 말, 입이 짧아졌다는 말이 오가다 딸이 문득 이렇게 말했다.
“난 어쩐지 그 동네 음식이 입에 맞는 것 같아. 바토이에서 먹은 가정식 백반 같은 그 맛이 자꾸 생각나. 풀풀 날리던 그 밥도 좋아.”
처음 가 본 동네에서 딸은 꽤 편안하고 즐거웠던 모양이다. 우리가 골라 다녔던 음식점들에서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늘 잘 먹었다. 유럽 아니면 여행 안 간다던 아이가 이제는 추울 때 떠나는 동남아 여행에 드디어 마음을 열었다.
이제 돈과 시간만 있으면 놀러 가자고 딸을 꼬실 수 있게 된 셈이다. 나중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최대한 많은 기회를 만들고, 딸에게 가능한 한 다양한 경험을 건네주고 싶다. 행복했던 기억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삶에 남겨주고 싶다.
엊그제 밖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그 도시가 주는 여행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여행을 권했다고 한다. 딸의 말 속에 그 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배어 있었다. 그걸로 충분하다. 지금은 그 정도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