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1
딸이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에 들어간 뒤로는 경남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았다. 어디에서 살거나 혼자인 건 마찬가지니까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다. 낯선 도시에서 한해살이 하는 기분으로 살면 괜찮을 줄 알았다.
좋은 점도 있었지만, 생활 전반엔 마이너스 요인이 더 많았다. 작년에 고향에 돌아가서 한해 산 것을 마지막으로 이젠 집에서 분리되어 다른 도시에서 밥벌이하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꼭 밥벌이를 위해서만은 아니었지만, 외롭고, 낯설고, 새로 사람 사귀기 힘든 나이에 타향에서 혼자 외로움을 더하는 일은 마음이 무거워서 이젠 하고 싶지 않다.
2024년 1월 말에 이사를 했어도 그 해엔 그렇게 고향 바다가 그리웠다. 가고 싶다, 보고 싶다를 연발하다 보니 정말 인연이 그렇게 닿더란 말이지. 올해는 뭘 그리면 그렇게 이뤄질까.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바람을 품어야지. 해마다 떠돌던 학교는 공립이어서 다음 해엔 또 동료들이 바뀌니 다시 찾아갈 곳이 없었다.
어쩌다 친해진 동료들도 지역을 번갈아 떠돌이 생활을 하다보니 거리가 멀어지면 한 번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보고 싶어도 쉽게 연락할 수가 없다. 눈망울이 맑고 깊어서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찼던 수학선생님, 집에서 내려주신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나도 결국 부산 그 카페 원두를 계속 사서 먹게 되었다. 4년 정도 지나니 얼굴은 떠오르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이사한 뒤에 세종에 놀러오신다고 했지만, 내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초대하거나 답을 이어하지 않아서 그렇게 우리의 바람은 바람으로 접게 됐다. 모든 게 그때 기억으로 멈춰있다.
케냐에 수학쌤으로 파견 다녀온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쉽게 하기 힘든 선택을 용감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늘 따로 노는 그 분위기에서 나를 위해 커피를 준비해 주곤 하셨던 그 따뜻한 한 잔 짜리 텀블러에 담겼던 향긋한 커피. 이런 기억을 남겨준 그들이 내 추억 속에 있어서 감사하다. BK, 삶이 그리 길진 않을 터라 머지않아 어느 좌표에선가 다시 만날 일이 있겠지. 늘 활짝 웃는 예쁜 미소가 그립네.
떠돌이 보따리 장사 같은 생활을 고향에서 1년 한 것을 끝으로 이제 완전히 접는다고 생각하니 삼천포에서 만난 그들부터 떠오른다. 우리가 함께 했던 짧은 여행, 맛있는 음식, 찰진 수다까지. 삼천포에서 만난 씩씩한 두 미녀들, 보고 싶소.
*
아침 일찍 깨서 출근, 오전에 일을 마무리하고 딸이 기다리는 원룸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쪽에서의 마지막 만찬은 제철 음식인 굴찜으로 정했다. 집에 들고 가야 할 짐을 제대로 꾸리지도 않았는데 다시 찾아가기엔 워낙 먼 곳이니 거제 굴구이집부터 가서 맛있게 먹고 일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주말엔 늘 웨이팅이 길었던 이 집에 평일 점심 시간을 넘기고 가니까 이렇게 말끔하다. 신기하고 기분 좋았다.


굴 탕수육과 미나리 무침이 먼저 나왔다.

양념 맛이 너무 좋아서 리필하고 싶어지는 미나리무침. 그러나 리필은 안 된다. 재주문할 수밖에. 딸이 미나리를 먹지 않아서 혼자 다 먹어야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해야 했다.

굴 탕수육을 다 먹고 나면 굴튀김을 내준다. 배불러서 남은 튀김을 포장해서 집에서 밤늦게 먹어도 맛있더라는.


그 사이에 굴이 다 익었다.


알이 크고 전혀 비리지 않다.

마무리는 굴죽. 이런 코스로 2인 50,000원.
짐을 꾸리고, 청소비 내지 않으려고 마무리 청소까지 다하고 나니 꽤 늦은 시각이었다. 워낙 차가 작아서 얼마 되지 않는 짐을 다 실을 수가 없었다. 전에 집에 오갈 때 옷이며 잡다한 살림살이를 다 옮겨놨음에도 꽤 짐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당장 필요하지 않은 종류의 물품 일부를 다른 장소에 보관하고 밤늦게 돌아왔다.
고속도로에 차가 드문 밤 10시 무렵, 딸이 처음으로 고속도로 운전을 해보겠다고 나섰다. 첫 번째 휴게소에서 자리를 바꿔 앉았다. 고성 공룡휴게소에서 산청휴게소까지 첫 고속도로 운전에 도전한 딸이 그 정도하고 나니 어깨가 저리고 손이 아프고..... 엄청 긴장했던 모양이다.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훨씬 넘었다.
짐 옮기는 중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아파트 복도에서 일없이 쓰러졌다. 넘어졌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다. 마지막 짐을 실으러 카트 끌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던 딸이 뒤쫓아 오다가 퍽하고 넘어진 나를 보고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와서 일으켜줘서 겨우 일어섰다. 하루 일과가 만만찮았다. 집 정리할 때 물청소, 걸레질은 내가 다 했다. 물론 짐 옮기는데 딸이 힘을 더 많이 쓰긴 했지만, 집에서도 생전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던 청소를 너무 무리하게 했더니 아무리 낮에 잘 먹었어도 힘든 시간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지친 뒤에 늦은 밤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리기까지 했으니...... 만만한 남사친, 흔한 남자친구라도 하나 있었더라면...... 남에겐 쉽고 흔하다는데..... 너무 힘드니까 혼자 별 생각을 다했다. 우리가 못할 건 없지만 여자 둘이 하기엔 버거운 일도 상당히 많았다.
이제 매주 500km씩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 일은 정말 끝났다.
*
그들이 졸업할 때까진 꼭 붙어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났던, 제자 *현이 편지.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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