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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9>/<2026>

평행우주, 북동쪽

by 자 작 나 무 2026. 2. 14.

2026-02-14

평행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같은 현실에 서 있지는 않은 사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는 내가 읽어보지 않은 문장들을 골라 음악과 함께 녹음해 보내왔다. 그 문장들이 반드시 나를 향한 것이라고 믿을 근거는 없었다. 실제로 그는 내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나는 이해하려고 했다.
문장과 목소리 사이의 간격을 메워보려고 여러 번 되짚어 들었다. 그러나 그가 택한 방식은 언제나 같았다. 설명하지 않는 방식, 의미를 남겨둔 채 물러서는 방식. 나는 질문을 떠올렸고, 그는 문장만 남겼다. 서로가 말을 줄인 것이 아니라, 그가 끝까지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 속 인물이 된 것 같았다. 누군가의 독백을 듣고 있는 청자이되, 대화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위치. 목소리는 내게 도착했지만 관계는 도착하지 않았다.

친밀함 이후의 침묵은 편안하지만, 친밀함 이전의 침묵은 추측을 낳는다. 설명되지 않은 말은 배려가 아니라 부담이 된다.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말해주는 것, 그것이 관계의 최소한이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이 이상한 인연은 왜 생겼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내가 아직 내려놓지 못한 기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 속에서 전달되는 말은 쉽게 오해를 낳고, 침묵은 그 오해를 오래 남긴다.
그래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방식으로 남지 말아야겠다는 것.

마주하지도 않았는데 어떤 경험은 흔적을 남긴다. 관계라 부르기엔 부족하고 우연이라 하기엔 길었던 시간. 아마도 이 일은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사건이 아니라, 내가 관계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 알게 한 계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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