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최소 조건이 부정된 경험은 괴로움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런 불협화음 같은 감정을 글로 정리하고 이제 그 창을 닫으려한다.
2026-02-14
글자 몇 자 더 쓰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생각했다.
상대가 어떻게 이해할지 알 수 없는데도,
그는 늘 최소한의 말만 남겼다.
설명은 없고,
문장도 아니고,
단어 한 개만 던져놓는 방식이었다.
그게 그의 자연스러운 태도였는지,
아니면 관계를 그 정도로만 두려는 의지였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이름 세 글자도 알려주지 않았고,
연락처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한동안 배려로 이해하려고 했다.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방식일 거라고,
서로 적당한 거리를 지키려는 태도일 거라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배려라기보다
관계의 책임을 남겨두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까워 보였다.
사람은 처음 만나면 자기 이름을 말한다.
얼굴을 내밀고,
악수를 하고,
서로를 호명할 수 있게 된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상대를 존재로 인정하는
가장 간단한 방식이니까.
우리는 그 과정을
한 번도 거치지 않았다.
그는 시를 읽어 보냈고, 나는 들었다.
대화는 없었지만, 시간은 분명 함께 흘렀다.
관계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했고,
우연이라고 부르기에는 길었다.
평행우주의 어느 지점에서
잠시 신호가 맞았던 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남긴 말보다
남기지 않은 말에 더 오래 머물렀다.
이해하려고 애쓰는 쪽은
늘 듣는 사람이었다.
그는 설명하지 않았고, 나는 해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정이 생겼다.
이상하게도 화가 난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무례해서라기보다,
내가 그 빈자리를 계속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최소한의 말만 남긴 관계에서
최대한의 의미를 만들어낸 건
결국 나였다. 그래서 이제 멈추기로 했다.
그가 보낸 문장들과 녹음들은
분명 정성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정성은 관계로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관계라고 믿고 싶었던 쪽에 가까웠다.
어쩌면 이 일은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경험이라기보다,
내가 무엇을 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인지
알게 된 사건에 가깝다.
나는 이름을 부르고, 설명하고,
서로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을 원한다는 것.
이 감정은 여기까지 두려고 한다.
잠시 연결되었던 신호는 끊겼고,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이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과 살아가려 한다.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