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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9>/<2026>

깊은 한숨

by 자 작 나 무 2026. 2. 20.

2026-02-20

 

아주 작은 감정의 변화인데도

내 안에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생겨난다.

그래서 이런 감정을 불러오는 대상을

피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30여 년 전에도 한 번 그런 사람이 있었다.

결국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부딪혔고,

그 인연은 내 삶의 방향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의미라고 믿던 20대 중후반 무렵,

처음으로 연애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사람을 만났다.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고 믿게 되던 시절이었다.

 

자유롭게 여러 언어를 오가던 서른 초반의 남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전부 던져도 좋을 것 같은 감정을 경험했다.

그 사람이 없다면

나도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는,

지금 생각하면 아득한 착각 속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인연은 우리가 만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아서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으로 끊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십 년쯤 지나자 얼굴도 또렷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내가 붙잡고 있었던 것이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사랑이라고 믿었던 강렬한 감정이었는지도 모호해졌다.

 

나는 오래 곁에 두고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인연을 바랐지만,

그런 감정은 젊은 시절에만 가능한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이 나이에 다시 누군가를 만나

그때와 같은 열정을 나누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요즘 문득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 감정이 정말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다.

 

아마 단지 궁금해서일지도 모른다.

가보지 못한 길을 향한,

늦은 호기심 같은 것일지도.

밤잠을 이루지 못한 몸은 점점 지쳐가고

거울 속 얼굴은 눈 아래로 깊이 꺼져 보이는데

잠은 오지 않는다.

 

가끔은 숨이 막히는 것처럼

가슴이 조여와 이유 없이 괴로운 감정에 빠져든다.

 

딸의 마음을 조금 이해해 보려던 생각이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렸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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