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한참 글로 쏟아내고 잠들었다.
아침에 깨고 나니 마음 위에 떠 있던 부유물들이 가라앉은 듯
조용해져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는 나를 향해 무언가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감정을 둘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만나지 않고도, 직접 말하지 않고도
시를 읽고 녹음해 던져 두는 방식으로
자기 마음을 간접적으로 흘려보냈던 게 아닐까.
그 안에 특별한 의미나 목적이 있었다기보다
어쩌면 외로움에 가까운 어떤 충동이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건네고 싶었던 시간.
그 과정 속에 내가 있었던 것처럼 느꼈지만,
실은 내가 아니라
그가 필요로 한 ‘자리’가 있었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아마 그 자리에 선 사람이 나였을 뿐,
그 누구였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일.
나는 선택된 사람이 아니라,
잠시 머물렀던 방향이었는지도 모른다.
의미는 없었다.
나는 없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본다.
그는 그저 말을 건넬 방향이 필요했고
나는 그때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누구라도 상관없었을 일이라면
상처가 될 이유도 없다고
조용히 마음을 달랜다.
나도 그런 적은 없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누구에게라도 그렇게
대하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되새긴다.
명확한 대상 없이
그저 벽이라도
내 말을 들어주길 바랐던 사람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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