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9

낮에 문득 잎이 올라왔을까 궁금해져서 임난수 은행나무를 보러 다녀왔다. 겨우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 있던 가지 끝에서 아주 작게 정말 눈을 가까이 대야 보일 만큼 조심스럽게 움이 트고 있었다.

혼자 두어 바퀴를 휘적휘적 돌았다. 산책이라기보다는 생각을 털어내는 데 가까운 움직임. 감기는 여전히 떨어질 생각이 없다. 이쯤 되면 병이라기보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눌러앉은 기분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곤 했다. 어제는 조금 무리를 했는지 오늘은 몸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 모임은 늘 그랬다. 딱히 나쁘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좋지도 않은, 말하자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감정 같은 곳.

누군가는 그 안에서 오래 머물며 좋은 사람을 만나겠지만, 나는 그곳에서 점점 내가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아마 여럿과 가볍게 스쳐가는 관계보다 한 사람과 오래 조금 더 깊게 이어지는 관계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걸 찾으려면 조금 다른 곳으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비슷한 속도로 걷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아직 이곳에서 친구 하나 만들지 못했다. 작년에는 통영에서 근무하며 오가는 길에 하루의 기력을 다 써버렸고 남은 마음으로는 누구를 만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것을 접고 그저 ‘잘 버티는 것’에 집중했다. 생각해보면 그 선택 덕분에 무사히 한 해를 건너온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일인데, 사람 마음이란 게 그 다음을 또 바라게 된다. 올해는 조금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




*
어긋난 인연과 잠시 스쳐간 기억들 가운데서도 좋았던 것은 그저 좋았던 순간으로 남겨두려 한다. 나와 이어질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되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분명한 이유를 납득한 인연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흐려진다. 굳이 애써 잊지 않아도 기억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정리해간다.
하지만 설명이 다 닿지 못한 채 남겨진 사람들은 가끔 마음 한켠에 걸린 작은 가시처럼 툭 하고 건드려진다. ‘그때, 조금 달랐다면 어땠을까.’ 이미 지나간 장면 위에 다시 조명을 켜고, 다른 선택지를 놓아보는 일. 그 공상은 대체로 짧고 대개는 쓸모가 없지만 종종 공상에 빠지게 된다.
봄이 왔다. 꽃은 이미 피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무언가에 쫓기듯 하루를 건너고 있다. 계절은 앞서가고, 나는 뒤늦게 따라가는 기분. 이럴 때는 더 애쓰는 것보다 덜어내는 쪽이 낫다. 에너지를 쓰는 곳을 줄이고 그만큼을 나에게 돌려주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