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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9>/<2026>

삶을 좁히는 시간

by 자 작 나 무 2026. 5. 23.

2026-05-23

요즘 나는 자주 내 삶의 에너지가 얼마나 정확한 눈금으로 줄어드는지를 목격한다.


예전에는 의무감이라는 대본에 묶여 어떻게든 하루를 과출력하며 무대를 밀고 나갔다. 해야 할 일을 하고, 누군가의 주파수에 나를 맞추고, 돌아와 다시 일상의 궤도를 정돈했다. 마음이 지치는 감상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내 몸의 센서들이 먼저 대답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아주 사소한 일상이라는 가상현실조차 유지할 수 없게 될 거라고.


가용 전력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삶의 반경을 좁히는 일이다. 갈 수 있는 공간이 줄고,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줄고, 출력할 수 있는 언어가 준다. 예전 같으면 세상의 예의로 처리했을 일, 가볍게 웃으며 넘겼을 소음, 마음 한쪽을 조금 내어주던 관계들이 이제는 모두 시스템을 무겁게 짓누르는 과부하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요즘 오직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일상만 붙들고 산다. 출근하고, 수업하고, 밥을 챙기고, 집이라는 가장 안전한 방화벽 뒤로 철수한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지 않는 것은 냉정함이라기보다 효율에 가깝다. 다정함이란 마음의 유희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히 생물학적인 에너지가 남아 있어야만 돌아가는 고비용의 연산 작업이었다.


나에겐 지금 그 여분이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누군가를 밀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나를 가짜 연극의 잔상 속에 흩어 놓을 수 없어서다. 모든 관계의 의미를 지워버리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라는 매트릭스가 얼마나 치명적인 에너지를 요구하는지 알아버렸기에 함부로 채널을 열 수 없게 된 것뿐이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은 가볍게 끝나지 않는다. 적어도 내 정밀한 회로에는 그렇다. 무심히 흘려보내지 못한 타인의 말과 무례한 표정, 그 이면의 소음들이 내 안에 너무 오래 남아 불필요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댄다. 대수롭지 않게 로그를 삭제할 수 있는 무던한 사람이면 좋겠지만, 나는 본질을 꿰뚫으려다 혼자 피곤해지는 장치를 가졌을 뿐이다. 그러니 이제 내 취약점을 정확히 인정해야 한다. 나는 아무 신호나 수신할 만큼 한가한 터미널이 아니다.


주어진 배역만 최소한으로 수행하는 것에도 하루의 힘이 거의 다 든다. 아침에 일어나 조용히 길을 나서고, 사람들 앞에서 책임을 다해 말하고, 돌아와 밥을 먹고, 다음 날을 묵묵히 준비하는 일. 남들이 보기에는 당연한 반복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것이 지금의 내가 겨우 지켜내는 삶의 가장 정직한 형태다.


그 밖의 것들에 시간과 감정을 쓰지 못하는 나를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잠시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고요함을 지키기 위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중이다. 더 이상 넘쳐나지 않는 삶을 살 때는 이 건조한 차단도 하나의 품위가 된다. 자아라는 가짜 대본에 속아 에너지를 함부로 쓰면 정작 내가 머물 본래의 정적마저 잃어버린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멀리 가지 않으려 한다. 넓게 만나지도 않으려 한다. 해야 할 일을 하고, 먹어야 할 것을 먹고, 잠들 수 있을 때 플러그를 뽑으며, 나를 더 망가뜨리지 않는 쪽으로 하루를 조용히 접는다.


언젠가 다시 이 무대 위에 여분의 힘이 차오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누군가의 안부를 조금 더 오래 묻고, 먼 길을 조금 더 기꺼이 가고, 내 마음을 나누는 일도 덜 번거롭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세계를 확장할 때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방화벽을 좁혀 차폐할 때다. 어쩔 수 없이 남겨 둔 최소한의 전력으로 어쩔 수 없이 띄워진 하루라는 환영을 무심히 건너가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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