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2
평소에 잘 걷지 않다가 어제 10킬로를 걸은 게 무리가 되면 오늘은 걷지 않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컨디션이 괜찮았다. 직장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일주일 분량이 꽉 차서 터질 지경이었지만, 내일은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까 걷기로 했다.
몸이 무거운 것과 마음이 답답한 것은 조금 달랐다. 몸이 무거우면 그냥 누우면 되는데, 마음이 답답한 날에는 누워 있어도 몸 안쪽에서 계속 뭔가가 웅성거린다. 눈을 감아도 학교에서 있었던 말과 표정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별것 아닌 일들이 하루치 먼지처럼 쌓여 있다.
오늘은 그 먼지를 안고 침대에 눌어붙고 싶지 않았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 많이 걸었으니 오늘은 조금만 걷자고 생각했다. 목표를 정하면 또 숙제가 되니까, 어디까지 가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발이 가는 데까지 가고, 힘들면 돌아오면 그만이다.
밖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낮의 열기가 조금 빠진 뒤라 공기가 심하게 덥지는 않았다. 길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고, 자전거가 지나갔고, 강 쪽에서는 물 냄새와 풀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된다기보다는, 생각이 몸의 리듬에 밀려 조금 뒤로 물러난다. 직장에서 들었던 말, 아이들의 표정,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 굳이 감당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뒤섞여 있다가도 발을 계속 움직이면 어느 순간 선명도가 낮아진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눈앞에서 나를 붙잡지는 않는다.
그 정도면 산책의 효용은 충분하다.
나는 요즘 무언가를 잘해내기보다 더 망가지지 않는 쪽에 관심이 많다. 예전 같으면 할 수 있는 만큼 더 하려고 했겠지만, 이제는 그렇게 밀어붙이는 일이 나를 얼마나 쉽게 닳게 하는지 안다. 학교 일은 학교 일이고, 내 몸은 내 몸이다. 내가 내 몸을 계속 갈아 넣는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강가를 따라 걷다가 잠시 멈춰 섰다. 물은 어제도 흘렀고 오늘도 흘렀을 것이다. 내가 보든 말든, 걷든 말든, 침대에 누워 있든 말든. 그런 사실이 서운하지 않고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계속 신경 쓰지 않아도 흘러갈 것은 흘러간다.
오늘 내가 한 일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었다. 그냥 퇴근 뒤의 몸을 침대에 바로 넘기지 않고, 바깥으로 한 번 데리고 나온 일. 그 정도의 선택이 아직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저녁이었다.

딸은 뛰고, 나는 걷고. 나중에 어딘가에서 만나서 집에 함께 돌아가기로 했다.


가볍게 뛸 체력이 붙을 때까지는 걷기만 하는 걸로. 집에서 출발하면 10km 코스여서 시간도 체력도 과한 것 같아서 이응다리 건너는 코스는 빼기로 했다. 이응다리 위에 벌레가 너무 많아서 옷에 붙고 얼굴에 마구 부딪힐 정도다. 그래서 이응다리 건너편까진 다른 다리를 건너서 타 차고 와서 건너편 이응다리에서 출발~
너무 더워서 걷기 힘들어질 때까지는 걷기라도 해야지. 딸이 매일 저녁 러닝하러 나가서 뛰기 시작해서 요즘 체력이 붙어서 생각보다 잘 뛴다.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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