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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5>

어느 역에 내리면 그를 만날 수 있을까

by 자 작 나 무 2005. 7. 26.

 

 

내 머릿속에선 이 노래가 끊임없이 돌고 돌았다. 끊임없이 시선을 끌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영화 속의 장면들처럼 이 목소리가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지하철 안에서도 흔들리는 걸음으로 계단을 밟을 때도, 서글픈 마음으로 혼자 음식을 기다리던 그 창가에서도, 마술처럼 이 곡과 함께 사랑에 대한 환상이 나를 은근히 기대에 부풀게 했다. 상상만으로도 설레고 가슴이 뛰었다.
 

 

 
 
분주한 아침, 사람들로 터져나갈 것 같은 빽빽한 지하철 안에서도 나는 웃음이 싱긋이 나왔다. 그냥 그렇게라도 웃어야할 것 같았다. 내겐 일상이 아닌 이 순간만 인내하면 되는 진풍경이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체온과 맞닿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니 그대로 드문 경험을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싱긋이 졸린 눈으로 웃음을 머금고 있었더니 한 구역 지나 환승역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물 쓸려가듯 다 내려버리는게 아닌가. 나는 오히려 허전했다. 그대로 몇 구역쯤 곤혹스러운 순간을 즐겨볼 참이었는데, 그들은 다들 어디론가 일제히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3호선으로 갈아타고 그대로 안국역으로 내빼고 싶었지만 발작처럼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속으로 흘러나오는 이 노래에 정신을 놓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건너편 의자에 잠든 남녀들을 보면서 나도 스르르 감기는 눈을 그대로 감을 수가 없어, 그들의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내 곁에 앉아 어깨로 머리를 꾸벅거리며 자는 아가씨, 건너편 말쑥한 얼굴에 햇볕도 못 본 것처럼 하얀 얼굴로 꿈벅꿈벅 눈을 굴리는 청년..... 그렇게 밀폐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정지된 듯 지켜볼 수 있다는게 얼마나 재밌는 일인지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자리에 앉으면 관찰하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간혹 흔들리는 건너편 차창에 비치는 내 얼굴을 보며 씨익 웃어보기도 하며.....

 

 

어느 역에 내리면 그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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