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6
전날부터 보고 싶다는 영화를 들먹여서 낮에 같이 보러 가기로 해놓고 딸이 아무 생각 없이 늦잠 자고는 그 영화는 안 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시무룩하게 방에 들어가서 나도 누워있는데 뒤늦게 일어나서 다른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한다.
실컷 자고 일어나서 오후 늦게 세종에 있는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봤다. 이전엔 대전 아웃렛에 있는 영화관에 갔는데 집에서 10분 거리에 영화관이 있고, 그다지 불편함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엔 주말에 가면 학생들과 마주칠까 봐 불편할 것 같아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찾아다녔다.
딸이 어릴 때부터 거의 빠짐없이 보아온 마블 영화 시리즈를 봤다. 캡틴 아메리카. 그냥.... 그랬어도 딸과 함께 영화관에 가는 것만이라도 감지덕지한 때여서 재밌게 잘 봤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충전기 세트를 사려고 했는데 코드가 맞지 않아서 그냥 나왔다. 꽃화분에 눈이 가서 한 번 쳐다보고 사진 한 장 찍어놓은 게 남아서 옮겨놓는다. 생기 있는 식물이 좋다. 식물원에 가서 한나절 그 속에 있으면 좀 나아질까. 몸이 가라앉는다.
2025-02-27
밤에 잠 드는 게 좀 어려워서 수면유도제 한 알을 먹고 잤더니 하루 종일 멍하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의욕이 떨어지고 기운이 빠진다. 해야 할 일은 또 하나둘씩 쌓이고, 곧 떠나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에 조금 어지럽다. 이제 겨우 이 동네에 안착했다 싶었는데.....
오후, 딸은 데이트를 하러 나가고 나는 혼자 남았다. 주방과 거실을 오가며 어슬렁거리다가, 문득 평소에 가지 않던 마트로 발길을 돌렸다. 내가 즐겨 쓰는 그릇을 할인하는 코너가 그 마트에만 있다. 포트메리온 파스타 그릇 두 개와 덴비 머그컵 하나를 샀다.
최근 깨뜨린 임페리얼블루 컵과는 조금 다른, 하지만 어딘가 닮은 진한 파란색. 손에 쥐었을 때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얼마 전 본 드라마에서 자꾸 짜장면을 먹는 장면이 나왔다. 화면 속 배우가 면을 휘휘 비벼 먹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쩐지 나도 그 맛을 떠올리게 됐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던 길, 홈플러스 3층의 음식점에 들러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켰다.
테이블에 앉아 면을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었다. 짭조름하고 달큰한 소스가 입안에 퍼졌다. 혼자 먹는 저녁, 혼자 먹는 짜장면. 생각보다 맛있었다. 곧 일을 시작하면 또 힘차게 해낼 것이다. 하지만 오래 쉬고 다시 움직이려니 몸이 굳고 마음이 느슨하다. 전신이 나른하고, 가볍게 떠올라야 할 생각들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개운하게 깊은 잠을 자고 나면 나아질까. 머리가 맑아질까. 손끝으로 컵의 표면을 쓸어본다. 짙은 파란색, 조금 다른 듯 비슷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