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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3>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

by 자 작 나 무 2018. 8. 29.

2003년 8월 8일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 화양연화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때는 언제일까.....  

영화를 보다가 영화 속에 나오는 음악에 매료되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음악이 수록된 음반을 구하여 듣는 일은 있었지만, 음악을 먼저 듣고 그 음악에 이끌려 영화를 보게 되는 일은 드문 일이다. 

 

선물 받은 CD에 수록되어 있던 곡 중 유난히 내 감성을 자극하던 그 첼로 연주곡을 반복해서 듣다가 급기야 언젠가 보다가 끝까지 보지 못하고 덮었던 영화를 찾았다. 영화 '화양연화'를 인터넷 상영관에서 뒤져서 피곤한 밤눈을 비벼가며 보았다. 

 

저 음악 같은 느낌이 드는 영화인지 궁금해서였다. 이 미묘한 느낌의 연주곡. 애달프고 시린 것을 담담하고 일상적인 색채로 느껴지게 만든 이 곡이 애절한 것보다 더 나를 쓸쓸하고 아프게 만든 건 양조위와 장만옥의 사랑이 주는 여운 때문이었을까...... 아님 이 음악이 주는 여운 때문에 그들의 사랑이 그런 빛깔로 보인 것일까...... 

 

이런 아릿하고 미묘한 느낌을 그냥 흘려버리려 해도 늘 잔상이 남는 까닭에 굳이 피하려 하지 않는다. 더 깊이 이런 느낌에 잠시라도 몰입해보려 한다. 

 

극 중 주인공의 건조한 일상과 사랑이 결핍된 결혼생활이 누구에게나 비슷한 현실이라면 왜 굳이 그런 생활을 선택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둘이 되어 덜 외로운 것보다 생활의 제약이 커져 더 답답하고 힘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다 그 뻔한 것을 알고도 뛰어드는 바보일까.....  

 

영화 속에서 장만옥은 사랑을 선택하지 못하고 결혼생활을 지켜간다.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그 결혼을 파기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쫓아 자신을 절제하려 하고 사랑하면서도 떠나는 그를 따라나서지 못한다. 

 

그만큼 깊이 사랑하지 않아서였을까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여러 가지 생각해 보지만 어떤 경로로 만나게 된 사람이건 사랑하게 되었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양조위를 따라나섰을 텐데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이유는 뭐였을까.... 

 

그 아름다운 순간을 간직함으로써 더 아름답게 기억하기 위해서 슬퍼하면서도 이별을 선택한 것일까..... 내게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들었던 한 사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문득문득 그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아주 가끔은 가슴이 아프도록 그리울 때가 있다. 전화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영화 속의 그녀처럼 내 음성을 담지 않고 그의 목소리라도 한번 들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차마 그러지도 못하고 그냥 그리움을 삭이고 비겁한 자신을 책망한다. 

 

나도 어쩜 그를 그만큼 깊이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서 사랑하지 않으려 애쓰다 헤어질 이유를 만들었던 나는 영화 속 그녀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양조위를 따라나섰다면 사랑을 얻는 대신 그녀가 비난해 마지않던 남편의 외도와 별 다를 바 없는 천박한 사랑으로 보일 것이 두려웠을까. 정신적인 교감을 이룬 사랑은 몸으로 사랑한 사람들보다 그 잔영이 오래가는 것임은 분명한가 보다.  

 

양조위가 그녀를 잊지 못해 앙코르와트의 구멍 난 벽에 그녀와의 사랑을 묻으려 한 것을 보면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를 탐하지 않았어도 가슴에 남은 사랑의 여운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까닭이었을 게다. 나도 어디든 먼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다. 

 

세월 속에 모든 게 묻히겠지만 나무속에 구멍을 뚫어 말하고 묻어둘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아프게 떠오르는 기억을 다 묻어버리고만 싶다. 첼로 현을 뜯는 손길이 내 가슴 상처를 한 올씩 뜯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도 이 음악을 멈출 수가 없다. 

 

이대로 내 육신은 박제해두고 지친 몸 안에 실려 다니던 영혼만이라도 자유로이 어디든 떠다니고 싶다. 감정에 휩쓸려 몸까지 시름시름 앓는 내 초라한 모습이 더 가슴 아프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도 오늘이 가장 아름답고, 내일 또 가장 아름다운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지나간 날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음으로 지금 이 시각이 가장 아름다운 때. 숨 쉬고 생각하고 아파하고 즐거워하며 존재하고 있는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때임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밖에서 또 무엇을 찾으려 한다는 것조차가 번거로운 일이다.

 

Quizas, Quizas, Quizas - Nat King Cole 

 

Siempre que te pregunto 

항상 난 그대에게 묻곤 하지요, 

Que cuando, como y donde 

언제, 어디서, 어떻게라고. 

Tu siempre me respondes 

그대는 늘 내게 대답합니다. 

Quizas, quizas, quizas.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럴 수 도 있겠지, 

Y asi pasan los dias 

그렇게 날들은 지나가고 

Y yo voy desesperando 

나는 절망에 빠져만 갑니다. 

Y tu, tu, tu, contestando 

그런데도 그대는 대답합니다. 

Quizas, quizas, quizas.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럴 수 도 있겠지,  

Estas perdiendo el tiempo 

그대는 시간을 잃고 있는 거예요. 

Pensando, pensando 

생각하고 생각하느라고 

Por lo que mas tu quieras 

하지만, 그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때문이라면  

Hasta cuando, hasta cuando..... 

언제까지라도, 언제까지라도..... 

Ay, asi pasan los dias 

아, 그렇게 날들은 지나가고 

Y yo voy desesperando 

나는 절망에 빠져만 갑니다. 

Y tu, tu, tu, contestando 

그런데도 그대는 대답합니다. 

Quizas, quizas, quizas.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럴 수 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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