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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11. 10

by 자 작 나 무 2024. 11. 10.

2024-11-10

 

쑈따리 부부의 여행 유튜브를 종종 본다. 한때 몰아보기로 전편을 다 보고 다음에 올라올 영상을 기다린 적도 있다. 그들의 여행에 특별한 것이 있는 게 아닌데 자꾸만 따라다니게 되는 건 나름 공감하거나 좋은 부분이 있어서 그런 거였겠다.

 

오늘은 갑자기 편도 7만 원짜리 표를 구하게 되어서 뜬금없이 떠나는 여행기를 보게 됐다. 다낭에 처음 가는 부인과 전에 와본 적이 있는 남편이 함께하는 여행 중에 남편이 말하기를, 여기 전에 혼자 왔을 땐 외로웠는데 옆에 부인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외롭지 않으니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고.

 

같은 곳에 가서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구와 함께인지에 따라 보고 듣고 느끼는 게 다르다. 혼자 엄청 맛있는 음식을 찾아내서 먹고, 좋은 풍경을 보며 즐기고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함께 할 누군가를 만나서 공유하고 나누고 발전하는 삶이 필요하다.

 

어제 일정이 피곤했는지 초저녁에 씻지도 않고 누운 자리에서 곯아떨어졌다가 한 시간쯤 자다가 문득 깼다. 깨서 꼭 할 일이 있었던 모양인지 깨지 않을 수 없는 다급한 꿈에 화들짝 놀라서 울먹이다가 깼다. 일어나서 꿈 이야기를 딸에게 하면서 꿈이었지만,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살았는지 딸과 관련한 생활에 핵심적인 내 심정을 그대로 그린 꿈의 일종이었다고 말했다.

 

꿈속에서 딸이 까불까불 놀다가 갑자기 뒤로 넘어졌는데 머리를 아주 세게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놀라서 딸이 있는 곳으로 가면서 어떤 결과든 확인할 때까지 호들갑을 떨거나 불안에 찬 울음을 울지 않겠다는 결심을 온몸에 새겼다. 속으론 긴장했어도 뚜벅뚜벅 걸어가서 딸을 일으켜 안는 장면, 뒤통수에 큰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네가 크게 다쳤으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말하며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오며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벅차게 통곡하는 장면에서 깼다.

 

꿈속에서 넘어진 딸은 너무 놀랐는지 그 자리에서 꿈쩍하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렸다. 그래서 얼마나 다쳤는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꿈을 묘사해서 이야기하니까 딸이 자기의 실제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고 맞장구를 친다. 내가 그랬나 보다. 어떤 일이 생겨도 그 일의 크기가 우리 삶에 미칠 영향까지 빠르게 계산하고 고통을 미리 불러와서 통곡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담담함을 일관되게 보였던 모양이다.

 

딸이 며칠 전에 내게 묘사해준 부분이 그랬다. 자기가 호들갑스럽거나 팔짝거리며 기쁨을 발산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가 내가 오버하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고 차분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봐서,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방법부터 찾지 그 상황을 감정에 호소하거나 동요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게 될까 봐 조심스러웠던 것뿐인데 실제로 나는 그렇게 현실의 문제를 빨리 해결할 방법부터 찾고 감정을 다독이더라는 거다.

 

F냐 T냐를 구분해서 친구들의 성향을 이야기할 때 딸이 나에게 집어서 말해준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긴 공감부터 과하게 요구하는 F 성향이 강한 친구가 부담스럽다고.

 

나는 F도 T도 아니다. 두 성향을 다 가지고 있어서 때에 따라 다르다. 사람마다 그러하겠지만, 나는 이 두 가지 양극의 성향을 타고나기도 했고, 그걸 표출할 때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일일이 경험하지 않아도 타인이 어떤 일에 대처하는 기질적인 성향은 계산해 볼 수 있겠지만, 그걸 계산하는 게 오히려 내겐 더 복잡하게 느껴진다.

 

어제 그런 계산에 유용한 방법을 일부 배워왔지만, 과연 내가 그걸 더 적극적으로 공부해서 활용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내 기질 중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겠다는 의미로 내 생활습관을 관찰하고 돌아보는 성찰의 의미로 고민할 부분은 필요하겠다.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부분과 연결하여 내 삶을 어디로 끌고 가야 할지 하는 부분에 관해 생각해 봐야겠다.

 

어제 들은 조언이 꽤 감사하고 좋은 말씀이었다. 내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성향이 강해서 추진하지 못한다는 부분 중에 내게 부족한 점을 이럴 때 보완해야겠다. 전에도 그런 적이 더러 있었다. 꽃 피워야 할 때가 오기 전엔 그 기반을 축적하는 과정을 거치는 시기여야 한다. 인생이 어떻게 내내 꽃피고 화려한 시절일 수 있겠는가. 내 인생에 이 지점은 쉬면서 충전하고 다음을 위한 준비 기간이고, 이 시점에 꼭 필요한 결정이었다.

 

미룬 것이 많다. 한 가지씩 현실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내 삶부터 돌아봐야 하고, 내 삶부터 챙겨야 한다. 내가 반듯하게 서고 내가 건강해야 다른 것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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