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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복선

by 자 작 나 무 2024. 12. 5.

2024-12-05

이불속에서 얼굴만 쏙 내밀고 누워서 날이 추워지니 따뜻한 국밥이 먹고 싶다는 딸이 최근에 맛있게 먹은 국밥집을 들먹였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씻고 바르고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외출이 아니니 바로 나섰다.

 

식당이 좁지도 않은데 늘 손님으로 북적이는 국밥집에서 마지막 주문이 오후 1시 반인데 그 시간 안에 매장에 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시각에 대기표 10번을 받고 가게 앞에 앉아서 기다렸다. 딸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에는 어떠한 불만도 내뿜지 않는다. 좀 춥게 입고 나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만큼밖에 잠시 앉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아도 이제 확실히 겨울이구나 싶다.

 

손님이 빠져나가고 우리에게 내준 자리는 마침 지난주에 처음 와서 앉았던 자리다. 탁자 옆에 몇 가지 식물 가지꽂이를 해서 물에 담가놓았다. 오늘은 딸이 그 식물을 보면서 통영에서 살던 집에서 제 나이 일곱 살에 샀던 산세베리아 이야기를 꺼냈다. 산세베리아를 사서 키우다가 작은 순을 떼서 화분에 옮겨서 몇 개 키웠는데 그중에 아주 작은 순 하나가 살아남아서 제 방 책상 위에 있었다.

 

재작년에 삼천포 한해 살이 하면서 화분을 들고 가지 않았다. 한 달에 적어도 두 번은 집에 들를 계획이어서 그때마다 물을 줘도 살아남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 시국에 직행 시외버스 노선이 몇몇 사라지고, 자차로는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세 시간에 걸쳐서 몇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야만 갈 수 있는 먼 곳이 되어버린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게 힘들고 번거로워서 빈집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뒤에 당연히 말라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겨울에 짐을 싸서 집에 돌아와 보니 작은 산세베리아는 일부는 말라서 죽은 것도 같고 일부는 살아있는 것도 같은 묘한 상태였다. 미라화 된 식물 같았다. 어쩐지 미안해서 그대로 뽑아서 쓰레기통에 버리지는 못하고 물을 한 번 뿌려주고 다음에 이사할 때 어쩔 수 없을 때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작은 산세베리아가 작게 새끼를 쳐서 곁가지도 내고 그대로 살아나는 거다. 거의 몇 달이나 물도 주지 않고 환기도 하지 않은 방에 내버려 뒀는데 어떻게 살아났을까.

 

딸이 어릴 때 샀던 산세베리아에서 가지를 떼서 옮겨 자란 그 화분 이야기를 꺼내서 문득 그때 꼭 살릴 거라고 용달차를 한 번 더 불러서 들고 온 테이블야자도 생각났다. 마트에서 삼천 원에 샀던 작은 식물이었는데 우리 집에서 쑥쑥 자라서 꽤 자리를 차지하는 큰 식물이 되었다. 그건 어떻게든 살려야 하고 물을 더 자주 줘야 하는 식물이어서 삼천포살이 할 때 원룸으로 10만 원을 주고 들고 왔다. 그땐 차가 없었다. 있어도 작은 차에는 실을 수 없는 큰 화분이었다.

 

국밥집에서 밥 먹다가 기특하게 오래 살아남은 산세베리아 이야기에 딸이 웃음 지을 때 갑자기 테이블 야자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기억났다. 삼천포에서 다시 짐을 옮길 때 큰 용달을 불러서 또 비용을 들이는 복잡한 것보다는 넓은 마당도 있는 지인의 사업장에 그 화분을 맡기기로 했다.

 

동물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것이어서 마음이 쓰였다. 어느 날 지인의 사업장에 갔다가 우리 집에서 잘 자라던 식물을 추운데 밖에 내놔서 그대로 얼어 죽은 것을 목격했다. 잘 맡아 길러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른 식물처럼 안에 들여왔으면 얼어 죽지는 않았을 텐데 따뜻한 곳에 있어야 할 것을 밖에 내놔서 저렇게 죽게 뒀을까 싶어서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지인을 마냥 탓할 수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무심하게 저렇게 오래 산 식물을 쉽게 죽도록 내버려 뒀을까 하는 원망스러운 감정이 얼음판 갈라지듯 내 감정을 크게 건드렸다.

 

잊고 있었는데, 내가 거짓말처럼 사람과 관계를 끊어버린 진짜 이유는 그런 거였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소한 이유가 아니라 말하지 못했어도 복선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거였다. 오늘 점심 먹는 자리에서 딸과 대화하면서 불현듯 그 생각이 떠올랐다. 

 

"그 테이블 야자가 내가 키우던 고양이나 강아지였으면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이라도 했을 텐데 말은 못 하고 마음이 끝 간 데 없이 쓸쓸해졌더랬어......"

식물 하나 말라죽게 한 게 뭐라고 그걸로 사람과 관계를 단절할 수는 없었다. 다음에 다른 일이 생겼을 때, 이미 시간 위에 쌓였던 흔적 없던 자리에 보이지 않는 자잘한 상처가 몇 가지 있었던 거다. 한 가지씩 헤아려서 생각하고 꺼내놓지 않았을 뿐. 오며 가며 간혹 들러서 차나 한잔씩 마시고 안부를 묻고 잘 지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딱히 큰 일도 없었는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그 속에 나를 꽤 흔들었던 그 일이 기록하지 않았는데도 아물고 딱지 앉은자리에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 산세베리아는 흙으로 만들었다는 토분에 담아서 수분을 머금고 있을 만한 황토볼도 담아놔서 넓은 집에 떠돌아다니는 습기도 가끔 머금고 그 습기가 수분이 적어도 살 수 있는 산세베리아를 완전히 말라죽진 않게 한 것이라고 유추하는 수밖에 달리 저 식물의 끈질긴 생명력은 불가사의 한 수준이다. 

 

손가락 몇 마디 정도의 크기였는데 이 집에 데려온 뒤에 키가 훌쩍 자랐다. 오래오래 함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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