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엔 옷걸이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새벽부터 아침 나절 내내 닭 우는 소리와 염소 소리가 번갈아 나서 일찍 잠을 깨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이불을 둘둘 말고 자도 피곤해지면 남들보다 훨씬 추위를 심하게 타는 탓에 이불 속에서 나오기가 싫었다.
지영이도 이불을 둘둘 말고 머리만 쏙 내밀고 방문을 열어 놓고 함께 새소리를 들었다. 어릴때 내가 자라던 집도 저렇게 쪽마루가 있고 흙마당에 나무들이 울창했었다는 이야기에 아이는 뭔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문 앞에 비파나무가 있었고 노랗게 익은 것이 시선을 끌었다. 지영이에겐 처음 보는 열매였다. 나는 그 맛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일단 맛보기로 한 개 따먹고 싶었다. 지영이는 맛있다고 더 따달라고 조르고, 슬슬 주인 아주머니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허락받지 않고 두 개 따먹고 그 다음엔 양껏 따먹으라는 허락을 받고 몇 개를 더 따서 맛있게 먹었다.
저녁엔 컵라면으로 아침은 비파 몇 개와 빵 반쪽씩으로 아침을 떼웠다. 주말이라 방이 없을까봐 염려한 것과는 달리 보길도 전역엔 민박집 천지였다. 나는 그 집에서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머물면서 섬 전체를 꼼꼼하게 둘러보고 오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만 이번엔 그다지 준비없이 나선 첫 걸음이라 무엇이든 다음을 기약하고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사흘치 받아놓고 두 봉지 먹고 모셔둔 약을 한 봉지 꺼내 먹었다. 곧 잠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쏟아졌다. 아니 마취라도 되는 것처럼 이불 속에서 꼼짝없이 억지 잠을 드는 기분으로 잠들어버렸다. 이렇게 마음놓고 잠들 수 있는 월요일이 없었다면 그렇게 먼 여행을 마음놓고 갈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
'국내 여행 > 길 위에서<200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마산 미황사<2005/06> (0) | 2009.11.10 |
---|---|
보길도-송시열의 글씐 바위<2005/06> (0) | 2009.11.10 |
단풍이 들기 시작한 피아골<2005/10> (0) | 2005.10.25 |
진주유등축제 스케치<2005/10> (0) | 2005.10.03 |
진주유등축제 스케치-전통한지 공예전<2005/10> (0) | 2005.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