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을 만난 건 우연히 지나던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걷다 만난 영화박물관으로 이어진 산책로에서였다. 난 가던 걸음을 우뚝 멈춰 서서 꼼짝을 않고 서 있었다.
녀석은 가시에 수도 없이 찔려서 아플 것 같은 선인장 밭으로 냉큼 비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순간 그 녀석을 무서워한 것이 너무나 미안해서 얼른 도망치듯 자리를 비켜주고 싶었다.
녀석도 우리를 무서워해서였거나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을 알고 자리를 비켜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관광객들이 가던 길에서 사라지자 선인장 밭에서 나와 산책로를 따라갔다. 저가 무서워서 피했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피해 줬거나 선인장 가시는 아팠을 것이다. 좁은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서로 비켜주기를 바라고 버티기도 하는데 녀석은 먼저 자리를 비켜주었다.
계속 그 녀석이 마음이 쓰였다. 사진 한 장을 남겨온 것도 선인장 밭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안스럽고 본능적이었다고만 둘러치고 싶지 않은 녀석의 작은 배려가 고마워서였다.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고 기억하고 싶은 그 순간의 고마움, 미안함..... 적어도 제주에서 만난 저 개보다 못한 인간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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