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11시 10분, 달아항에서 출항하는 연대도행 배를 탔다. 학림, 송도, 저도, 연대도, 만지도 등으로 하루에 4번 운항하고 시간은 약 20분가량 소요된다. 요금은 왕복 8천 원.
첫 운항은 7시 50분, 두 번째는 11시 10분, 오후에 세 번째는 섬주민에게만 매표한다. 4시 이후에 있는 마지막 배는 섬에서 숙박할 사람만 탈 수 있다. 나오는 배가 없으므로.

학림도를 지나다보니 소나무 위에 학들이 가지마다 조랑조랑 열매 열린 듯 앉아있는 것이 꼭 동화 속에 나올 법한 풍경이다.


첫 번째 기항지인 학림도 풍경

이 배가 출항한 달아항 부근에 저 멀리 언덕에 E.S 리조트와 수산과학관이 보인다.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물길이 현실과 나를 갈라놓는 듯하다.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1층의 좁은 선실은 들어가기 갑갑해서 2층으로 올라가서 앉았다. 40명 정원인 작은 배여서 앉을자리도 부족하다. 그래도 일찍 탄 나는 제일 시원한 자리에 앉아서 트렌치코트를 입고 스카프까지 동여매고 앉아있었다.

드디어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출렁다리가 보인다. 금세 도착했다.

언젠가 연대도 가는 날에는 참고 자료 조사를 하고 가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나서게 된 오늘은 잠결에 급하게 입던 옷 그대로 입고 가방만 달랑 들고 나와서 어디서 뭘할지 망설여졌다. 그래도 연대도 한 바퀴 도는 코스는 돌아봐야지 생각하고 지도를 한 장 찰칵~




동네를 가로지르는 '지겟길'에 파란 페인트 안내선이 그려져있다. 저 집의 개는 묶여있지 않았다. 처음 내가 저 길목을 지날 때 사자만 한 덩치의 저 녀석이 낮은 담 위로 다리를 올리고 어찌나 짖는지 무서워서 다시 왔던 길로 돌아내려 갔다.
에코체험센터까지 갔다가 다시 지겟길 걷기 도전~

관문은 통과했는데 초입부터 길이 좁아지기 시작하면서 경사도 만만치 않다.

한낮인데도 그늘진 길을 보니 문득 지난 번 박경리 기념관 갔다가 무덤가에서 뱀을 연이어 본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오금이 저렸다. 갑자기 밖으로 나와서 마침 휴대폰 충전도 거의 안되어 있는 데다 사고가 생겨 119에 신고를 한들 섬인데...... 여기까지 생각하니 도무지 걸음이 앞으로 걸어지지가 않아서 슬금슬금 뒷걸음쳐서 돌아내려 왔다.


에코 아일랜드를 표방하는 연대도엔 태양광 발전소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전기를 자체 생산해서 사용하고 있다.

새로 칠한 지붕들은 강렬한 빨간색이다.

꼭 저리로 걸어들어가야할 것만 같은 동네 교회


맨발로 걸으면 건강에 좋다는 몽돌해변, 맨발로 걷기엔 돌이 좀 크다.






볕이 따뜻한 것이 뭐든 잘 마를 것 같다.

연대도엔 이런 특이한 문패가 집집이 많다.


만지도 가는 길

이 출렁다리를 건너면 만지도(晩地島), 앉아 있던 아저씨가 계속 담배를 피워서 피하느라 얼른 찍고 다리도 얼른 건넜다. 담배연기는 어디서든 싫다. 맑은 공기와 바람을 쐬러 온 이곳에선 더 싫을 수밖에.....

보기엔 별로 무섭지 않을 것 같았는데 건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무섭다. 바람에 다리가 출렁거린다. 내 속도 덩달아 출렁거린다. 일단 앞만 보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지도 못하고 아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열심히 걸었다.

건너편에 와서 연대도 쪽을 바라보고 사진 한 장 찍고 출렁다리와는 안녕~ 다신 안 밟을테야~

만지도로 이어지는 나무다리 옆으로 물색이 참 곱다. 하얀 모래까지 사람을 들뜨게 한다.

물 속이 환히 들여다보일 만큼 맑다. 수영도 못하면서 물에 들어가고픈 충동을 느낄 정도로 온화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만지도는 같은 시간에 하선한 객들이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여서 내가 간 시간엔 한산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니 카메라에 타이머 맞춰놓고 사진 몇 장 찍기로 했다. 혹시나 하고 삼각대도 들고 왔는데 삼각대 없이 데크 위에 카메라 올려놓고 찰칵~



혼자 셀카놀이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만지도 쪽에서 오다가 흠칫 놀라서 돌아간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다시 오는 센스~ 선글라스 껴서 눈 안마주쳤다고 아주 뻔뻔하게 계속 사진을 찍었다.
고구마 쪄놓고, 커피도 들고오려고 했는데 집에서 나올 때 버스시간, 뱃시간 맞추려니 너무 급해서 먹을 걸 싸오지 못했다. 배고프니 뭐든 먹어야겠다. 연대도 검색하니 해물라면집이 있었는데 그게 연대도 골목골목 헤매도 없더니 만지도에 있다. 대충 흘려본 탓에 어딨는지도 몰랐는데 동네가 좁으니 금세 찾아냈다.

옆 테이블에 팔순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서울에서 여행 왔다는 객이 라면을 먹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나를 보시더니 외국사람 같다고 말을 붙이신다. 주인아주머니도 한 마디 거들고, 주인아저씨도 한 마디, 할머니 모시고 온 아저씨도 나라 이름까지 들먹이며 내 얼굴을 보며 말을 건넨다. 이국적으로 생기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쉽게 말 건넬 이유가 한 가지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해물 전복라면 한 그릇에 6천 원.

전복 두 개, 홍합 네댓 개, 게 살, 오징어 등의 해물이 들어있다. 육수를 따로 만들어서 라면을 끓인다더니 과연 국물 맛이 훌륭하다. 배고파서 정신없이 면을 건져먹고 국물을 아껴먹고 있는데 아저씨가 국물이 맛있는데 안 먹는다고 또 한 마디 하신다.

일행이 없어 공기밥 하나 시켜서 맛난 국물에 한 숟갈 말아먹을 수도 없고..... 국물 남기려니 아까워서 주욱 다 들이켰다. 집에 가서 이렇게 끓여먹어보고 싶다. 육수를 따로 준비해서 끓였단 소리만 안 들었어도 흉내를 내보는 건데, 육수를 따로 준비하는 게 귀찮을 것 같다.

한 번 해먹어보겠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저 라면을 사 왔다. 다음에 맘 내키는 날 해물만 사 오면 된다. 전복이랑 홍합까지 사 오려면 배보다 배꼽이 크겠다.


마을에 빈 집은 없다더니 흉가는 몇 채 있다. 대낮이라 그닥 무섭지 않지만 밤엔 무섭겠다.


나도 어딘가 이렇게 엉뚱한 모양새를 하고 있더라도 한적한 곳에 집 한 채 있었으면 싶다. 어릴 때 문 열면 길 건너 바로 바다인 곳에 살았어도 여전히 바다가 내려다보이니 눈이 시원하니 좋다.

라면을 먹고 나니 나갈 뱃시간 까지 50분 가량 남았다. 연대도 지겟길은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데다 가파른 길이고 혼자 외진 길 오래 걷기 싫어서 포기했는데 그래도 그냥 가긴 섭섭해서 만지봉으로 슬슬 올라갔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눈뜨고 숨만 쉬고 있어도 행복하다.

섬에 1박하지 않는 한, 최대 체류시간이 3시간 이내다. 그 안에 연대봉, 만지봉 다 걸을 수 있기는 하지만 너무 힘들게 걷기만 하는 것보단 이런 한산한 풍경을 보고 앉아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아무도 없다. 아무리 걸어도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 신선 놀음하듯 노닥노닥 걷다가 사진 한 장씩 찍고 놀았다.






정상을 몇 발치 앞에 두고 돌아갈 뱃시간 못 맞출까 걱정되서 여유 있게 내려가야겠다 싶어 돌아내려 왔다. 만지봉에 갈 생각을 했더라면 좀 더 일찍 올라왔어야 했다. 근데 동네에서 골목골목 헤매고 걷다 노느라고 시간이 그냥 지나가버렸다.


하늘로 치솟을 듯 서 있는 이것은 조릿대랑 비슷한데 뭔지 모르게 다르다.


오래된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향하는 길처럼 보인다. 열병식하듯 좌우로 선 나무들 사이로 낡고 나지막한 계단이 허물어져 형체를 잃고 낮은 경사로를 이루고 있다.


배를 타기 전에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컨테이너 박스로 지어진 동네 카페에서 핸드드립 커피가 2천 원이라고 씌어 있길래 오늘 급히 나오느라 챙겨마시지 못한 커피를 그곳에 앉아서 마셨다. 열린 문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커피 내려주는 분의 인상이 단아하고 곱다.


이 노란 컨테이너 박스 카페에선 연신 올드팝이 큰 소리로 흘러나왔다. 흡사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2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바닷가 선착장에서도 카페의 올드팝을 들을 수 있다.

출렁다리를 다시 건너기 무서워서 연대도에서 손님을 태운 배가 만지도로 올 때까지 기다렸다.

만지봉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본 만지도 마을 풍경.

2시 35분, 만지도에서 통영으로 나가는 배를 탔다. 11시 10분 배를 탄 승객은 모두 그 배로 나와야 한다.

학림도 근처 가두리 양식장엔 테두리마다 갈매기들이 줄지어 앉아있다.


학림인지 송도인지 구분이 안되는 이 작은 섬의 소나무 숲엔 여전히 그림처럼 백로가 앉아있다.


딸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고 다음에 꼭 함께 오리라 생각했는데 마침 백로들이 앉은 사진에 눈을 반짝인다. 그 섬에 혼자 온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점심 먹고 나오는 길에 사람들이 혼자서 밥 잘 먹었냐고 물었다. 혼자 온 사람이 나뿐이어서 다들 나를 기억하는 모양인지, 조금은 어색한 듯 그러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배에서 얼굴 한 번은 본 사람들이다. 같은 배를 타고 들어와서 같은 배를 타고 나가야 하니 두 번은 본 셈이다.
들어갈 때 배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분은 라면집에서 다시 마주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타는 곳에서 또 마주쳐서 케이블카 타는 곳에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팔순 넘어도 생생하신 그분을 보니 나도 한 30년은 넘게 놀러 다닐 수 있겠다. 건강하게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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