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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길 위에서<2015>

만지도에 다녀와서

by 자 작 나 무 2015. 11. 7.

이제 서른 즈음이 지난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김광석의 '서른 즈음'이란 노래가 머릿속을 맴도는 아침. 간단히 밖에 나갈 채비를 하고 간밤에 미리 만들어둔 계란말이를 맛있게 먹었다. 가방 하나 달랑 매고 또 길을 나선다. 가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 절기에 하늘이 내게 주는 따뜻한 포옹 같은 볕을 한껏 쬐고 와야겠다.

 

 

지난주보다 달아항에서 연대도행 11시 10분 배를 타는 손님이 적었다. 학섬을 거쳐 그 곁에 나란히 자리 잡은 두 개의 섬에 주민들을 내려준 뒤에 연대도에 도착했다.

 

 

학섬에도 한껏 단풍이 들었다. 바다색과 어울려 더 눈에 선명한 붉은빛이 곱다.

 

 

 

 

연대항에 내려서 곧장 만지도로 넘어가지 않고 출렁다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벤치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아직 오전이라 볕도 신선하다. 바다도 함께 더 싱싱한 빛으로 반짝인다.

 

 

 

 

자리를 조금 옮겨가며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벤치에 앉았다.

 

 

난.... 아무리 봐도 영악하게 머리 굴리며 잘 살 얼굴은 아닌 것 같다. 태생이 그렇지 못하니 사람들 속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표독해지진 못한 모양이다. 나를 좀 알게 된 사람들은 보기와 달리 물렁한 나를 대하게 되면 놀란다.

 

혼자 사진 찍기 놀이하는데 재미 붙여서 찍어본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다고 하하 호호 웃으며 혼자 놀면서 마냥 즐겁다.

 

 

이 다리가 완공된 건 지난 12월 말경이라는데 그전에 이 두 섬 사이를 오가려면 꼭 배를 타야 했을 테니 오가기가 불편했겠다.

 

 

 

오늘은 저 다리를 건너 제일 뒤에 있는 능선 정상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연대도 몽돌해변으로 가는 둘레길을 걸었다.

오래되어 넘어진 나무 둥치가 길에 가로누워있다.

 

 

작은 바위섬에 와서 부딪히는 잔물결이며 햇빛 받아 반짝이는 것에 자꾸 눈길이 간다. 우리 동네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이 길목엔 아름드리 오래된 소나무들이 많다. 한 번 안아보고 싶지만 송진이 묻지 않을까 염려되어 손으로 살짝 그 오래된 껍질을 어루만져보고 지나왔다. 저 언덕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뎌내고 저 모습으로 서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인고의 세월을 건넜을 노송들에 경외감을 느낀다.

 

 

이 자리는 혼자 앉으면 외로울 것 같아 언젠가 다음에 동행이 있을 때 와서 앉기로 하고 눈도장만 찍고 지나왔다.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서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음악을 듣고 싶다. 말없이 가만히 파도소리만 들어도 좋을 것 같다.

 

그 생각을 하며 바닷가에 섰는데 괜히 눈물이 핑 돈다. 혼자라도 좋은데 그 자리에 선뜻 앉을 수 없었던 내 마음이 안타까워 나오는 자신에 대한 위로의 눈물 같은 것이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신선한 공기가 가슴속을 한 바퀴 돌고 나와 허공에 흩어지고 또 새로운 신선한 공기가 내 가슴속으로 드나든다. 그걸 느끼면서 가만히 눈을 감으니 너무 아름다운 감정들이 일순간 온몸을 휘감고 지난다. 그 모든 것이 음악 같다. 여러 가지 악기 소리가 적절하게 어울려 교향곡을 연주하듯 빛과 바람이 함께 내 마음을 온통 간지럽힌다. 금방 그 순간에 매료되어 희열감을 느낀다. 나는 이토록 단순하다. 그냥 그 순간 좋으면 모든 것을 잊고 행복함에 빠져든다.

 

 

 

내 앞에 누군가 나타난다면 그 순간 그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바다가 아름다웠다. 물 위에 부서지는 햇빛이 찬란하여 그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이 그저 황송할 정도였다.

 

 

 

연대도 몽돌해변을 지나 마을을 가로질러 다시 출렁다리 쪽으로 가기 위해 연대도 골목을 지난다.

반짝이는 이 꽃들이 나를 봐달라는 듯 꽃잎을 쫙 펴고 빛을 머금고 있다.

 

 

 

돌담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마침 이 집 문패가 돌담이 아름다운 집이다.

 

 

 

 

어린 시절 친구네 집에 가면서 보았던 어느 골목이 떠오르는 풍경이다.

 

 

 

 

 

다시 출렁다리 앞에 섰다. 첫 방문 때와는 달리 오늘은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와서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부는데도 다리를 건너는 동안 그렇게 속이 울렁거리진 않았다.

 

항상 처음은 어색하고 조금 어렵다. 두 번째 만나니 이 다리도 살짝만 긴장한 상태로 건너기에 충분할 만큼의 스릴감이 있어 오히려 좋았다. 사람과의 만남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세 번째 보아야 그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금속 와이어 사이로 보이는 풍경도 한 장 찍었다. 내가 오늘은 옆도 보고 지나왔다는 인증을 하는 차원에서.

 

 

다리를 건너니 걷기 편하게 잘 짜인 데크길이 바다를 따라 놓여 있다. 이 길을 걸을 때 참 기분이 좋다.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

 

 

함께 와서 찍어주는 사람 없어도 혼자 기념사진을 잘 찍는다. 바람에 카메라만 넘어가지 않는다면야.....

 

 

오늘은 여유롭게 바닷가에서 거센 해풍과 싸우며 하늘에서 내린 빗물로 겨우 연명하며 억세게 제 빛을 발하며 피어있는 바위틈 식물들을 눈여겨보았다. 보랏빛이 고와서 몇 알 따먹고 싶다.

 

 

만지도 마을을 지나서 만지봉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내 마음은 아직 온전히 예쁜 하트는 못되고 어설픈 이런 모양쯤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 장 찍었다.

 

 

만지봉 오르는 첫 고갯마루에서 연대도를 돌아보니 이런 모습이다.

 

 

처음 이곳에서 경사진 바위벽을 내려다보며 영화 빠삐용 생각을 했다. 어릴 때 눈 비벼 가며 밤중에 두어 번 보았던 빠삐용의 내용은 다 기억나진 않지만 처절하게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이 어떤 것도 견뎌낼 수 있는지 엿보았고, 진정한 자유야말로 어떤 투쟁을 해서라도 쟁취해야 그 무엇일 거라고 그 영화를 보면서 어린 나는 생각했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면서 더 땀이 많이 나서 겉옷 한 겹을 더 벗고 반팔만 입고 가다가 나뭇가지 셀카를 찍고 재미 붙여서 뒷모습도 찍었다. 난 역시 혼자 잘 논다.

 

 

만지도 흥해랑 카페는 무슨 일인지 오늘은 문을 열지 않았다. 섬에 오는 길에 커피를 뽑아오지 않았다면 많이 섭섭할 뻔했다. 다행히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두 잔 내린 커피에 뜨거운 물 타서 적당히 마시기 좋은 진한 아메리카노를 보온병에 담아와서 바다를 보며 나만의 노천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마셨다.

 

 

 

며칠 동안 자주 들었던 작곡가 '지박'의 곡 중 '이동규'씨가 부른 뮤지컬 뮬란 중 "La Femme Dragon'이란 곡이 계속 흥얼거려졌다. 지난번 이 섬 여행을 다닐 때 아이패드에 이어폰을 꽂고 계속 그 곡들을 반복해서 들은 탓이었던가 보다. 가사를 다 알지도 못하는데 하이라이트 부분을 반복해서 불렀다.

 

 

 

흙이며 물이 부족한 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은 최선을 다해 피어나고, 열매 맺는다. 이게 생의 본질 중 하나인가 보다. 유전자에 각인된 대로 제 소리를 내고, 제 몫을 다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은 분연한 노력으로 그 흐름에 과감히 도전하여 진정한 성취를 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난..... 일단 타고난 대로 내 기질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에 동조하기로 했다.

 

 

다시 연대도로 건너왔다. 전엔 출렁다리 건너기 무서워서 라면 사 먹고 만지도에서 배를 타고 나왔는데 이젠 출렁다리도 건널만했다.

 

 

 

 

계속 가는 길마다 부딪히던 한 커플을 피해 싼 판에서 잠시 머물다 등대로 갔다.

 

 

여유와 낭만이 오후가 되니 살짝 흐린 빛으로 또 다른 색조를 뽐낸다.

 

 

 

 

드디어 나를 싣고 갈 배가 들어온다.

 

배를 타고 들어올 땐 한 마디도 붙이지 않던 객들이 뱃머리에서 또 나를 보고 반갑다는 듯 말을 걸어온다. 말머리마다 '아가씨'라는 호칭이 붙어서 싱긋이 웃으며 친절하게 답했다. 어디서 왔느냐, 혼자 왔느냐.... 기타 등등..... 배를 잠시 기다리는 동안 그 섬에 같이 들어왔던 많은 사람들과 눈인사와 더불이 이런저런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젠 언제 다시 오게 될지 알 수 없는 이 섬을 떠나는 배 위에서 섬들과 기약 없는 이별을 한다.

 

 

 

배 위에 서니 만지도 언덕 위의 하얀 집이 보인다. 나도 저 언덕 하얀 집에서 내 님이랑 반백년 살고 지고.....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연대도 모습도 뒤로 남겨진다.

 

 

바다 위를 질주하는 작은 배를 마지막으로 내 카메라는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구불구불한 산양 일주 도로를 쏜살같이 달리는 총알택시 같은 시골버스를 탔다. 배에서 같이 내린 세 청년이 함께 앉았다. 그들도 흔들리는 버스의 질주에 몸을 가누기 위해 전신에 힘을 꽉 주고 창밖을 바라본다.

 

자주 보던 풍경인데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과연 내가 이런 풍경들을 뒤로하고 고향을 떠날 수 있을까..... 집으로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까무룩 하게 잠이 들 것 같았다. 살짝 졸음이 쏟아지고 비도 몇 방울 뿌리고 흐려진 하늘조차도 변주곡 같은 하루를 보내다 다시 혼자 집으로 간다.

 

가는 길에 채소가게에서 햇고구마 한 바구니, 버섯 한 바구니, 부추 한 줌을 덜어서 샀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 검은 비닐봉지 몇 개를 들고 가벼운 걸음으로 내 자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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