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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8>

삼손

by 자 작 나 무 2018. 5. 31.

1.

입었던 스키니진을 그대로 입고 나가자니 다리가 숨을 못 쉬는 것 같아 갑갑하다. 날씬해 보이겠다고 이렇게 꽉 끼는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몸한테 할 짓이 아니다. 딸이 입겠다고 사놓은 스키니진 두 개를 졸지에 내가 입게 되었다. 내 몸에 들어가니 내 옷이 된 것이다. 

 

얼마나 오래 묶여있던 것인지 오랫동안 임자없이 옷방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옷들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 혹시나 좀 넉넉하면 입을 수 있을까 싶어 사들인 브랜드별 정장 바지도 결국 한 번도 입지 못한 것부터 한철 입고 다시는 못 입은 것까지 줄줄이 꺼내 입어봤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잘만 들어간다. 완전히 횡재한 기분이다. 작아진 옷들이 어느날 커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2006년에 입었던 나비가 그려진 하늘하늘한 흰 원피스는 그 해에 입고 다시는 입을 수 없는 비운의 옷이 되었다. 

 

해마다 조금씩 계속 끊임없이 살이 쪘다. 나이살이라 하기엔 너무한 정도까지 쪄서 앞으론 그냥 그 모습으로 살 생각도 했더랬다. 그런데 얼마 전에 옷방 청소를 하다가 줄줄이 걸린 꽃무늬 원피스들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해마다 조금씩 큰 옷을 샀어도 이젠 입을 수 없는 저 옷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풀 곳이 없고, 마음을 둘 곳이 없어 헤매듯 여행도 다니고 넋두리 잔뜩 써서 블로그질도 했지만 그걸로는 뭔지 모르게 부족했다. 술도 못 마시고 춤도 노래도 소질 없고 취미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맛있는 걸 만들거나 사서 잔뜩 먹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덩치가 커졌다. 

 

여름이 오기 전에 다시 그 원피스를 입을 수 있을 만큼 몸을 돌려놓고 싶었다. 나이는 돌려놓을 수 없지만, 몸매는 돌려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해 다 공평하니 억울해 할 필요는 없지만, 한창때 좋은 사람 만나 사랑받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06년엔가 그 다음엔가 선거하던 날 그 원피스를 입고 가서 인증샷을 찍었다. 이제 2주 뒤면 다시 선거하는 날이다. 무려 햇수로 13년 전에 입던 옷을 입고 투표소에서 인증샷을 찍어보고 싶다. 지금은 그 옷이 가뿐하게 들어가진 않는다. 숨을 참고 있으면 봐줄 만 한데 그렇게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다. 

 

어쨌든 마음 먹은 대로 뭔가 변화를 주고 싶다. 나이 앞자리가 하나 더 변하기 전에 뭐든지 후회가 덜 남게, 덜 억울하게 한 해를 잘 살아보고 싶다.

 

 

 

 

아무리 뒤져도 그 옛날에 원피스 입고 찍은 사진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찾을 수가 없다. 그 사이 단발로 자른 머리카락이 조금씩 길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아직 단발머리에 가깝다. 다시 저만큼 머리카락이 길어 나올 때까진 뭔지 모르게 구경꾼으로 살면서 흐트러진 내 삶을 정비하는 시기로 생각해야겠다. 

 

 

 

 

내가 삼손도 아닌데..... 머리카락이 짧으면 어쩐지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 괜히 잘랐다. 염색을 다신 하지 않으려고 염색한 부분 길러서 다 잘라내다보니..... 새로 기른 머리가 단발만큼이다. 기운 내서 뭐든 해보자.

 

 

 

 

 

 

"용기를 내어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 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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