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많아서 오늘은 출퇴근 길에 해저터널을 지나왔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우울해져서 걸음이 터벅터벅 걸어졌다. 그대로 아무 데나 폭삭 주저앉을 것 같은 위태위태한 걸음을 겨우 옮겨서 무거운 다리를 끌고 가다가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원래 알던 사람은 마스크를 써도 알아봐지는 게 신기한 게 아니라 당연하다는 사실을 오늘 확인했다. 인사를 나누고 집에 가는 길은 여전히 걸음이 무거웠다. 혼자 집에 돌아가서 며칠 묵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치워봐야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해서 치우지도 않고 대충 씻고 드러눕는다.
오늘은 문앞에 택배 상자 3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좋았다. 상자 하나를 뜯으니 와인잔 세트가 들었다. 사진으로 봐서는 어떤 크기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는데 큼직한 것이 마음에 든다. 일단 어제 마시다 남긴 와인을 아주 조금 따라서 마셨다.
새로 주문한 바지는 들어가기는 했는데 '나는 돼지다'라고 광고하는 것처럼 뚱뚱해 보인다. 바지 입는 건 포기하고 그냥 고무 치마 몇 개로 버텨야겠다. 바지는 나중에 딸내미 오면 줘야겠다. 안 입겠다면 어쩌지?
하나씩 사면 비싸서 12개 들이로 산 스타킹 한 묶음까지 택배 상자를 다 열고 나니 또 금세 잠시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이 정도면 우울증인가 보다. 거의 제어가 안 될 정도로 막무가내로 현실 인지력이 떨어지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고 막막한 어둠 속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기분이다.
학습 자료라도 만들까 하고 컴퓨터를 켰는데 드디어 컴퓨터 파워가 다 됐다. 이제 안 켜진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는데 대비도 하지 않고 그냥 뒀다. 노트북을 켜니 그 컴퓨터에 연결했던 무선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겨서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다.
노트북 들고 가서 랜선 떼서 한참 헤매다가 해결했다. 노트북과 무선랜 공유기가 서로 딴짓하느라 연결이 안 되는 동안 딸이 전화를 했다. 며칠이 지나도 전화 한 번 하는 일 없어서 내가 전화하기도 했지만 겨우 이틀 지났는데 한 달은 지난 것 같다. 그 정도로 혼자 지내는 2주일이 길고도 길었다.
너무 우울하고 외로워서 나는 섭섭한 감정을 목소리에 담았다.
오늘 해저터널을 건너오면서 이대로 살기 힘드니까 내년엔 진주에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난 정말 혼자는 못 살겠다. 자꾸 서럽고 서글프고 눈물 나서 혼자는 이대로 견딜 수가 없다. 우울해져서 없던 에너지까지 다 고갈되는 기분이다.
고향에 혼자 남아봐야 뭐 하나...... 텅 빈 집에 혼자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나 혼자 살아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돈은 벌어야 하지만, 이렇게 살고 싶진 않다. 외로운 것이 정말 싫다. 이렇게 살면 없던 병도 나고 빨리 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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