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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전화번호

by 자 작 나 무 2021. 6. 25.

전화번호를 바꿨다. 6월 21일까지 바꾸지 않으면 알아서 자동으로 바꿔버린다는 협박(?) 같은 안내 문자를 연이어 받았다. 어차피 바꿀 때가 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번호를 바꾸고 전에 쓰던 번호로 전화 걸어보니 없는 번호라는 안내 메시지가 들린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고 썼던가 생각해봤다.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될 것을 타의에 의해 바꾸는 게 싫기도 했고, 생각해보니 다른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십수 년 서로 왕래하지 않는 동안 그들은 단 한 번도 내게 전화하지 않았다. 내가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았던 것은 꼭 뭔가를 기다렸던 것은 아니지만.......

 

한때 쓰던 전화번호가 사라지면서 인생에도 꽤 큰 변화가 생겼다. 90년대 후반에 고성에서 이사 나오면서 내 방 전용 전화번호를 그대로 가져올 수가 없어서 내 연락처가 지인들에게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삐삐조차도 없던 내게 개인적인 연락처는 PC 통신 때문에 따로 마련한 내 방 전용 전화뿐이었다.

 

그 번호가 사라지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의 현실 속에서 지워졌다. 꼭 바꾸어야 할 이유가 없다면 바꾸고 싶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만든 뒤에 쓰기 시작한 번호를 바꾸지 않고 어언 20년 동안 011을 계속 썼다. 

 

문득 이전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없는 번호라는 안내 메시지가 들리니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다. 전화번호 바꾼 것을 안내하지 않았더니 공적인 연락을 받아야 하는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어쩔 수 없이 변경번호 안내 서비스를 신청했다.

 

꽁꽁 여며뒀던 마음을 헤집어 보니 어디서건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렸던가 보다. 기다리는 전화는 오지 않는다는 사실만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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