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이상 삼각함수와 씨름했다. 수학 문제 푸는 걸 손 놓은 지 몇 해나 지났는데도 좀 뒤적여보니 그럭저럭 문제가 풀린다. 그 시간 동안 꼼짝없이 곁에 앉아서 최대한 공손하게 집중한 우리 반 학생 한 명, 그 한 명을 위해 시간을 내고 안 하던 일을 했다.
밤늦게 퇴근하고 돌아오니 딸은 여기까지 찾아온 제 남자 친구 만나러 나가고 없다. 내일은 부산 사는 동기 집에 파자마 파티하러 간단다. 온통 어질러 놓고 나간 집에 들어와서 입고 나갔던 옷만 벗어놓고 우두커니 앉았다.
어제는 온라인 수업 주간 동안 늦잠 자고 자주 출석 체크를 하지 않아서 전화해도 받지 않던 학생에게 늦잠 자는 버릇 좀 고치라고 제 친한 친구들 있는 자리에서 한마디 했다가 마스크 너머로 표정 변화를 읽고 바로 사과했다. 그 정도 말도 할 수 없는, 해서는 안 되는...... 그보다는 제 문제나 잘못을 결코 타인이 있는 자리에서 눈곱만큼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욕심에 어긋나는 짓을 내가 한 거다.
이유야 어쨌거나 그냥 따로 불러서 이야기 해야 했었다는 후회가 든 순간 바로 불러서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그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학생이 운 게 아니라 내가 울었다. 남에게 사소한 것이라도 상처 주는 말을 하면 내가 더 힘들다.
그만큼 나도 상처받는 게 싫은지도 모른다.
*
글 쓰다가 문득 감정이 확 올라와서 분노의 밤참을 먹는다.
몇 해 전에 A라는 곳에 근무할 때 B를 본 적이 있어서 기억한다고 말했더니
B가 그런다.
A에 있을 때,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라고
그 말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참 울렁였다. 왜 사람이 어떤 특정 직책에 있거나 남 보기 번듯한 지위를 가지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표현할 만큼 비참하게 자신을 그려야 하는가.
그때 비하면 몸이 완전 반쪽이 된 B는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내뱉고 어려워하거나 거리낌 없이 상대를 치고 들어간다. 나는 혹시라도 마음 상하는 일 만들까 봐 주저하는 부분에 시원하다 싶을 만큼 말을 내지른다.
젊다는 게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상대적으로 나는 소심하고 너무 조심하는 것 같다. 거름망 없이 내 입에서 말이 막 나와서 걱정했는데 나에 비하면 독설 같은 직설을 힘 있게 잘한다. 부럽다.
혼자 있는 게 잠시 좋았다가 마지막 남은 롤케이크 한 조각을 삼키는데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무 생각 없이 씻고 잠이나 자라. 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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