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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정감독으로 입실
거의 부감독은 동성인데 오늘은 좀 조심스러운 남자 부장님이시다. 시험 시간에 늦는 학생이 있어서 책상을 복도로 하나 뺐다. 쳐다볼 생각은 없었는데 정면에서 책상 들고나가고 의자 들고나가는데 등판, 팔뚝, 엉덩이까지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내 속에 음란마귀가 어젯밤부터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 보다. 동료는 남자가 아니다. 도리도리~
침묵 속에 갑자기 방귀 소리가 난다. 누군가 참다가 흘린 방귀다. 아무도 웃지 않는다.
한참 침묵 뒤에 또 방귀 소리가 또렷하게 났다. 이 정도면 한바탕 웃어줘야 하는데 낙엽 구르는 소리에도 웃는 애들이 얼마나 긴장 상태로 시험을 보는지 아무도 웃지 않는다.
그 안타까운 상황이 씁쓸한데 어쩐지 나는 웃음이 날 것처럼 어딘가 간지럽다. 그 순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학생이랑 눈길이 마주쳤다. 아무래도 범인인 모양이다. 소리 없이 킥킥거린다. 나도 모르게 웃음보가 터져서 소리 나려는 걸 혀를 눌러서 겨우 참았다. 부감독이 쳐다볼까 봐 고개 돌리고 칠판 보고도 웃음이 거둬지지 않아서 고개 올려 거룩한 태극기를 한 번 보고 감정을 눌렀다. 신성한 시험 시간에 감독이 웃으면 안 되지. 안 되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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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부감독으로 입실
교실 뒷쪽에서 꼼짝 못 하고 서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게 눈에 띈다. 뒤에서 서너 번째쯤 자리에 어떤 학생 뒷주머니가 뜯어진 것 같다. 엉덩이 부위에 살색으로 뭔가 꽤 선명하게 보인다. 이걸 알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된다. 서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바지 뒷주머니 부분이 찢어진 게 앉으니까 벌어져서 신체 일부가 노출되는 것 같은 상황이다.
침착하게 눈에 힘을 주고 다시 봤다. 아무리 봐도 피부색이다. 그래도 시험 치는 중에는 못 본 척해야 하니까 시선을 애써 다른 곳으로 돌렸다. 도대체 그 살구색 같은 노출 부위는 어떻게 처리할지 나 혼자 몹시 고민했다. 정감독이 감독 날인하느라 내가 앞으로 나갔다 돌아오면서 자리를 옮길 기회가 생겨서 그 부위를 확인했다.
아, 다시 보니 그 부위는 바지가 찢어진 게 아니라 주머니에 넣은 피부색 물건이 빼꼼 고개를 내민 거였다.
내 속에 음란마귀가 뭐든 이상하게 보이게 한다. 음란마귀 쫓는 굿이라도 해야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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