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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7월 9일

by 자 작 나 무 2021. 7. 10.

신발장 번호를 나이 순으로 주는 곳도 있었다. 신발장 번호 덕분에 바로 나이가 대충 공개된다. 숨겨봐야 뭐 하나......

그래 봐야 덕 보는 것도 없고. 여기는 시험 감독 짤 때 나이순으로 된 표를 메신저로 보내준다. 무슨 인기 랭킹도 아니고 왜 번호 붙여서 나이순으로..... 그렇다고 한 시간이라도 편하게 빼주는 것도 아니면서.

 

덕분에 대면 대면하던 어떤 분이 어제 점심시간에 같은 테이블에서 밥 먹으면서 랭킹 순서 보니까  '바로 내 아래던데....... 근데 우리는 터울이 좀 있나 봐요......'라고 말을 건넸다. 여기 올해 처음 근무지를 옮긴 사람은 그분을 포함해서 여자 3명뿐이다. 

 

사무실이 각각 다른 층에 있어서 얼굴 볼 일도 없고 업무 반경도 다르다. 우연히 점심시간이 겹쳐서 그것도 우연히 줄을 비슷하게 서서 밥을 같은 테이블에서 먹은 단 한 번이 짧은 대화라도 나눌 유일한 기회다. 물론 그렇다고 다 대화하지는 않는다.

 

가볍게 오가는 말 몇 마디에 그나마 웃으며 밥 먹다가

'난 자기가 40대 초반인 줄 알았는데 정말 동안이다.......'

 

기분 좋은 말 해줘서 고맙다고 오늘 일기에 쓴다고 했다. 사실 동안 근처도 못 가는데 고정화한 연령대 분위기가 아니어서 가끔 40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까지 본다. 자세히 보면 나이는 충실히 먹은 껍데기인데 철 덜 든 게 티 나는 거다.

 

비슷한 연령대에서는 내가 나이가 한참 아래인 줄 알고 말 걸지 않고, 말 좀 섞으려고 했다가 내가 자기들 상상보다 나이가 의외로 많아서 불편해져서 입을 다물기도 한다. 자기가 느끼는 것보다는 숫자를 셈해서 대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도 그들의 의사에 맞춰서 조심해 준다. 나이 들면 편하게 대화할 상대조차 만나기 어렵다. 싱글 카페 친구만 못하다.

 

*

건강검진 결과, 운동 안 하고 열심히 먹어서 살이 확 쪄서 좀 걱정했는데 심혈관 나이도 내 껍데기에서 보이는 나이와 비슷하다니 앞으로 관리 좀 하면 정말 생물학적 나이도 더디게 더해지지 않을까 싶다.

 

이제 일주일만 버티면 방학이다~ 3학년 생기부를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고, 담임 맡은 반 생기부까지 일더미가 기다리고 있다. 마감기한이 악어 뱃속에 있는 시계 초침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기댈 것은 아침에 일찍 씻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2주의 자유로움 뿐이다.

 

이번 주는 쓰나미 맞고 온 것처럼 머릿속 얼얼함만 남은 피곤한 한 주였다. 이제 겨우 비 그쳤는데 덥고 지쳐서 나가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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