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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갈증

by 자 작 나 무 2021. 11. 27.

 

어제 오후부터 급격하게 기운이 빠지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안 좋아져서 놀랐다. 목요일 야근하고 나서서 버스 정류장에서 담배 피우는 남자를 만났다. 멀리 가서 피라고 말하기도 무서워서 내가 자리를 옮겨서 그 남자가 담배를 다 피우고 한참 지나서야 그곳에 다시 갔다.

 

그랬다가 우리 동네 가는 마지막 버스 기사가 승차 거부하고 나를 외면하는 바람에 갑자기 추워진 바깥에서 멍하니 오래 서 있어야 했다. 막차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택시를 타려다가 기본요금 밖에 안 되는 거리여서 걷기도 하고 버스를 타기도 하는데 그날은 야근 시간이 50분으로 끊어지면 그 시간을 전부 0으로 처리하고 다른 날 야근한 시간과 합산도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보니 택시도 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왜 이렇게 소심하게 하지 않아도 될 생각까지 하는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만큼 여유가 생긴 것인지 멍청해진 것인지 멍하니 길에 서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자니 피곤하고 애매해서 택시를 호출했다.

 

아주 멀리서 5분 뒤에 온다는데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택시가 막 나타난다. 길 건너편 택시를 어떤 아저씨가 잡아서 타는 것을 보고는 내 뒤에 있던 중학생 네 명이

 

"저 영감이 잡았다. 저 영감 끌어내리자."

이것보다 더 무서운 어조로 어찌나 크게 떠드는지 밤 10시 넘은 시각에 그곳에서 내가 먼저 택시를 잡아서 탔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멍해졌다.

 

그 학생들이 깡패처럼 건들거리다가 자리를 뜨고 몇 대의 빈 택시가 지난 다음에야 내가 호출한 택시가 나타났다.

그날 저녁의 일이 나에겐 약간 스트레스였던 모양인지 다음날 당장 몸이 안 좋아졌다. 

 

그리고..... 오늘도 약간 의기소침한 상태로 조금은 어지럽고 멍하게 시간을 보낸다. 

 

*

오후에 딸내미가 전화해서 오늘 오후에 그 지역 KT에서 개최한 일종의 '오징어 게임' 같은 행사에 참여해서 1등 해서 백화점 상품권을 상금으로 받았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이야기한다.

 

며칠 전부터 그 일정에 관해 말해서 어쩐지 운 좋은 내 딸이 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했는데 정말 실력과 운이 반반 작용해서 1등까지 했다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언젠가 모 백화점 경품 행사에 응모했다가 50만 원 상당의 호텔 이용권을 받았던 때가 나에게 유일한 요행수였다. 

 

이후에도 나는 가끔 어떤 요행수를 바라는 것 같다. 내가 그리던 따뜻한 사람을 만나는 꿈, 그것이 진정 내가 바라는 크나큰 요행수가 아닐까. 전생에 그런 인연을 쌓기는 했을까?

 

자주 생각나고 걱정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한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거리가 멀어서 주춤거리다가 별이 되었다. 어느 하늘에선가 빛나고 있을 별로 생각하기로 하고 마음을 덮었다. 그래도 한 번 열린 감정은 멈추지 않고 한동안 달렸고 더 다가서지는 못하고 어느 지점에선가 서서 그 별을 가끔 바라보기만 한다.

 

절대 열리지 않는 문도 있고,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하고 자동으로 열리는 문도 있다. 내 감정은 여리고, 어리석고, 미숙하다. 감정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고구마 찜솥에 고구마가 익으면 몇 알 먹고 한숨 자야겠다. 오늘은 하는 일도 없이 피곤한 것을 보니 아직 회복이 덜 된 모양이다.

 

스모그처럼 내려앉은 이것을 걷어내게 환기해야겠다.

 

올해 졸업앨범에 실릴 사진

 

몸은 안 좋은데 입맛은 떨어지지 않은 것을 보니 누적된 피로 때문에 생긴 일시적 증상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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