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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무척 오랜만에

by 자 작 나 무 2021. 11. 28.

딸이 집에 다녀갔다.

추석 연휴 이후엔 처음이다. 굳이 주말마다 오라 가라 할 이유가 없었다. 가끔 내가 볼일을 만들어서 딸이 있는 곳에 다녀오고 같이 밥 먹고 돌아오는 게 고작이었다.

 

오늘은 오후 늦게 와서 새로 산 아이폰 13 미니를 받아 갔다. 늦은 점심 겸 저녁을 같이 먹고 아이클라우드에 휴대폰 내용물 꾸러미를 옮기는 동안 잡다한 이야기를 나눈 게 전부였다. 주말 내내 자리보전하고 누워만 있다가 딸이 도착할 시간에 가까워져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서 청소기 돌리고, 현관에 수북했던 택배 상자를 정리했다. 

 

참 신기한 것이 그렇게 천근만근이어서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던 몸이 누군가 온다니까 움직여졌다. 가져온 큰 여행용 가방에 더 가져갈 옷과 신발 등을 간추려서 담고 차 시간에 쫓겨서 나갔다. 그제야 나도 그간 쌓인 택배 상자 분리하여 정리한 것을 버리러 함께 나가서 배웅해주고 왔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딸이 집에 와서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하고 둘이 껴안고 동동거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졌다. 가족이 주는 안정감. 나를 평화롭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던 딸이 이렇게 가끔만 얼굴을 내미니까 어떻든 앞으로 나는 혼자 꿋꿋하게 잘 살아낼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하다.

 

이 진공 상태 같은 혼자인 시간이 어색하다.

같이 밥 먹는다는 게..... 참 평범한데 대단한 일인 것 같다. 

 

*

차를 사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딸이 반대한다. 우리처럼 생활 반경이 좁은 사람에게 차는 얼마나 사치품이고 필요를 넘어서는 물건인지를 조리 있게 설명한다. 나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엊그제 야근하고 주중에 두 번 밤길에 추운 곳에서 떨며 버스 기다리며 자잘한 일 겪은 것이 내 건강을 악화하게 했던 이야기도 했고, 사람들과 섞여서 대중교통 이용하는 불편함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 생활환경과 수입과 지출 대비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라고 결론 냈다.

 

이유 불문하고 눈을 반짝이며 차 사서 저 기숙사 갈 때도 좀 태워주고, 올 때도 터미널에 마중 나오라고 말했다면 겁 없이 저지르고도 남았을 나를 부추기지 않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줘서 참 고마웠다. 내 딸이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니까 돈도 함부로 쓰지 않겠다는 믿음이 더 두터워진다.

 

필요한 것인데도 새 물건을 함부로 사들이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 사고, 아끼며 사는 내 모습에서 배운 것인지 절로 그렇게 타고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경제적 여건이 다른 가정에 비해 턱없이 부실한 데도 살아진 것은 이런 생활 습관 덕분인 것 같다.

 

금요일 마감이었던 일을 다 끝내지 못하고 급하게 퇴근했는데 오늘 밤에 다 하고 내일 출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 주부터는 또 해결해야 할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결국 해내는 일이니까 겁먹지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음에 감사하면 마음의 무게도 좀 줄어들 테다.

 

지난 5월에 탔던 욕지도 모노레일. 경사 급한 곳이 많아서 아찔한 구간이 많긴 했지만 운행 속도가 느려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오늘 사고 뉴스가 떠서 다시 보게 된다. 추워지기 전에 꼭 한 번 더 다시 가보고 싶었는데 내년 봄에나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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