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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8월 2일

by 자 작 나 무 2022. 8. 2.

*

어제 사 온 새송이 버섯은 꽤 맛있었다. 저녁에 세로로 몇 조각 썰어서 소금 살짝 뿌려서 소금구이로 먹었다. 고기 구워 먹는 기분으로 한 송이만 구웠는데 너무 맛있어서 자려고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서 두 송이 더 구워서 차례로 먹었다.

 

나의 생존 본능 혹은 식욕은 이토록 강하다. 

 

 

*

오늘은 퇴근하고 그대로 녹초가 되어 누워서 아침에 놓친 뉴스를 듣다가 스르르 잠들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어느 순간 깨서 눈 비비고 있으니 딸의 전화가 걸려온다.

 

잠이 덜 깨서 말이 어버버 이상하게 나온다. 피로가 덜 풀려서 생각하는 속도와 말로 내뱉는 속도가 다르고, 하고자 하는 말을 짧게 줄여서 하려니 역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결국 풀어서 한 가지씩 말했다.

 

딸이 이번 여행에서 잘 먹고, 잘 자는 것을 보고 건강한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뭔가 더 열심히 하라거나 잘 하란 잔소리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고 살아서 여태 우리가 다투는 일 없이 살았는지도 모른다. 보여주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인정하는 거다. 더 나은 선택이 어떤 것인지 놓친 게 있어서 아쉬우면 알아서 할 때가 오겠지. 조금 늦으면 늦은 대로 그것도 자기 인생인 거다.

 

우리가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에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한 번 더 강조해서 말했다. 그리고 딸과 대화하다 보니 조금 밀린 내 일은 싫어서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완벽하게 잘하고 싶은 내 욕망을 충족하지 못하는 현재의 자신에게 슬쩍 밀린 거다. 그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살아내느라 얼마나 자신을 옥죄며 살았나 생각하니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압박감 느끼는 어떤 일은 사소하지 않은 일이고, 내가 그런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이고, 내가 그 일을 할 능력이 있고, 그 일을 할 기회를 받은 것이 새삼스럽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해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 다양한 이유로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 일을 하기로 했다.

 

 

*

낮에 비 와서 걷지 못해서 몸이 몹시 무거웠다. 며칠 출근 하지 않다가 출근한 첫날이어서 더 그랬을 테고, 비도 한 몫했다. 오후에 잠시 비 갠 동안 쉬는 시간에 나가서 운동장 두 바퀴를 혼자 쌩하니 돌면서 뇌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가니 생각이 맑아졌다.

 

어디선가 들리는 높은 음역의 밝고 경쾌한 피아노 건반 두드리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리고 후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농도 짙은 풀냄새에 꽉 막혔던 뒤통수가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더 맑게 다듬어서 조금이라도 남는 기운이 생기면 그곳으로 넘겨주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자연 속에서 걸으며 얻는 생기로 충전되어 몸이 맑아지는 순간처럼 전신이 맑고 강한 에너지로 가득해지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 에너지를 형상화해서 순간 전송 버튼으로 쿡 넘겨주고 싶다.

 

*

두 송이 남은 새송이 버섯을 결대로 죽죽 크게 찢어서 볶음팬에 살짝 볶다가 고춧가루 한 숟갈 넣고 붉은 기가 도는 것을 보고 끓는 물을 부었다. 그리고 짬뽕 라면 한 개 넣고 버섯 짬뽕을 끓였다. 달걀도 깨지 않고 수란처럼 고스란히 익게 두었다.

 

저녁 생각이 없어서 건너뛰려고 했는데 그냥 두면 금세 못 쓰게 될 것 같은 새송이 버섯 두 송이를 살리려고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게 그려지는 그림대로 뭔가 만들어 먹는다. 상상한 맛과 똑같은 맛이 결국 한 젓가락도 남김없이 다 먹게 한다. 그냥 라면 하나 끓이면서도 이런다. 아무 생각 없었더라면 라면을 끓이지도 않았을 테다.

 

머릿속에서 셀프 구조 시스템으로 맛있는 맛이 그려지는 거다. 욕구를 자극해서 먹고 살아남으라고. 이 넘치는 오지랖이 이런 날 한 끼 굶지도 못하게 하네.

 

디저트로 꾸덕한 그릭요거트 몇 숟갈에 냉동 블루베리 한 주먹을 털어 넣고 예쁜 남보라색이 퍼지는 것을 보고 한 입씩 먹는다. 깔끔하게 한 끼를 잘 해결했는데 너무 늦은 시각이다. 이렇게 피곤해진 몸을 혹사하며 억지로 마감 날짜 전에 일을 끝내려고 동동거리기 싫다. 먹고 기운 내서 일해야 하는데 먹고 기운 충전해서 블로그에 일기 쓰고 그냥 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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