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뒷자리에 앉은 분이 오늘 확진되었다. 일찍 개학한 그곳에선 유일하게 나와 점심시간에 마주 보고 앉아서 밥을 먹는 분이다. 20대 후반 아가씨인데 어제는 어쩐 일인지 칸막이가 있는 식당이지만 마주 보지 않는 자리에 앉아서 식사했다.
다솔사에 갔다가 원룸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삭 복숭아 한 상자를 샀다. 코로나로 격리하게 된 동료 원룸 앞에 먹거리 몇 가지 장만해서 갖다주고 왔다. 내 딸보다 다섯 살 많은 어린 동료가 부담스러울까 봐 전화해서 뭐 먹고 싶으냐고 묻지도 못하고 한참 망설였다.
딸에게 전화해서 뭘 사주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빵을 사다 주라는데 과일을 샀다. 기숙사에 사는 딸이 평소에 먹기 어려운 게 과일이라고 했으니 원룸에 자취하는 그녀도 과일 사다 먹고살지는 않을 것 같다. 과일칼이 없다 해서 과일칼도 갖다 줬더니 아삭 복숭아가 맛있다며 과일 깎아서 먹은 인증샷을 보내준다. 전엔 그러면 민망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해주니 오히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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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업 시간에 문득 생각났다.
자꾸만 학생들에게 뭘 더 해줄까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 예쁜 구석도 없고, 내게 싹싹하거나 깍듯하지도 않은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과 불친절함의 대명사인 그들에게 내가 왜 이렇게 유난을 떨며 신경 쓰는 걸까?
무관심해지거나 무신경해지지 않고 끊임없이 관심 두고 자꾸 해줄 것을 찾는 것을 보니 내가 그들을 어떤 방면으로든 좋아하는 모양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자꾸 뭐든 해주고 싶다.
졸업하고 막일로 돈 벌어서 연 이율 30%로 돈 빌려주는 고리대금 업자가 되겠다는 그 학생만은 예외다. 도무지 설득할 수 없는 꽉 막힘 앞에서 나도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그 학생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지 싫어하진 않는다.
감정을 과하게 쓰지 않으려고 애 쓰기도 하지만, 줘야 할 것을 적절히 주지 않으면 죄지은 기분에 불편해서 견디지 못한다. 학생들에게 자꾸 뭐든 해주려는 것은 좋아해서가 아니라 이런 이유인 모양이다. 최대한 해줄 수 있는 것을 해줘야 내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꾸 변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런 부분엔 일관성이 있다.
그에게는 뭐든 줄 수 있다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은 적어도 줘야 할 것을 주지 않아서 죄지은 기분 때문은 아니었을 거다. 순간에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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